가라오케의 소음 너머로 내면을 정리하는 밤: 알바니아 베라트(Berat)
[유럽 자전거 여행] #44 그리스의 높은 물가와 자전거 인프라를 고려해 경로를 급히 수정하여 도착한 알바니아의 고도시 베라트(Berat).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이국적인 지붕 아래서, 이제는 새로운 만남보다 내면을 정리하는 '여행의 갈무리'에 집중합니다.
2025.06.03
어제 밤 경로를 찬찬히 살펴봤다. 오늘 오흐리드 호수에서 와일드 캠핑을 하면 내일 그리스로 넘어가게 될텐데, 경로 설정이 쉽지 않다. 17일까지 아테네에 도착하면 되는데 내일 넘어가버리면 그리스에 거의 보름 넘게 있어야한다. 게다가 그쪽으로 가는 경로에는 캠핑장이 거의 없어서 와일드캠핑을 하거나 숙소에 묵어야하는데 그리스 물가가 또 만만찮다.
그리스 물가는 서유럽과 비슷한 수준인데 자전거 인프라는 많이 차이나고 무엇보다도 수도 아테네를 제외하면 웜샤워 호스트가 없다. 부킹닷컴으로 확인해봐도 최저 숙소 수준이 7만원대 정도인데, 그리스는 최대한 천천히 늦게 넘어가는 편이 좋을 거 같아서 급하게 방향을 바꿨다.
멀지 않은 곳에 Berat 이라는 도시가 있다. 도시 안에 호스텔도 많을 걸로 봐서 관광지임이 확실하다. 너무 큰 관광지는 자전거 여행하기 안좋은데 적당한 규모의 관광지는 물가도 저렴해지고 인프라도 잘 되어있어 오히려 좋은 경우가 많다.



Berat은 어떤 도시인가?
Berat은 알바니아 중부의 오숨 강(Osum River) 옆에 있는 아주 유명한 역사 도시이다. 가장 유명한 별명은 “천 개의 창문의 도시”인데, 언덕을 따라 층층이 붙은 하얀 오스만 시대 가옥들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유네스코도 Berat을 Gjirokastër와 함께 오스만 시대 건축의 드문 보존 사례이자, 여러 종교·문화 공동체가 오랫동안 공존해온 도시로 설명한다.
다른 알바니아 도시와는 다르게 Berat은 전통가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역사가 깊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된 도시다. 딱 봐도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사실 여기도 오기전에는 아무 정보가 없었고 와서 직접 보니 멋있어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알아본거다. 지난번 몬테네그로에서의 코토르만과 똑같은 맥락이다.
내가 느낀 이 곳의 가장 큰 특징은 지붕의 색이다. 남서부 유럽과 크로아티아의 붉은 지붕과 대조적으로 이 곳에는 약간 색이 빠진 지붕이다. 그래서 그런지 약간의 오리엔탈리즘이 느껴진다. 알라딘의 양탄자 같은 것들이 떠오른단 말이다.







천개의 창문의 도시
호스텔을 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단은 저렴해서 많이 찾고, 젊은 백인들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함께 놀려고 호스텔을 찾는 경우도 많다. 당장 여기만해도 오늘 밤에 가라오케 파티가 있고, 시간대별로 관광코스가 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호스텔을 침대에서 잘 수 있는 캠핑장 수준으로 생각하고 온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고 그저 조용하고 화장실 휴지있고, 따뜻한 물만 잘 나오면 더 바랄게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조용한건 포기해야한다.
여행이 이제 곧 끝이난다고 생각하니 무언가 새로운 활동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어울리느라 애를 쓰는게 싫다. 확장이 아니라 소모로 느껴진다.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새로운 개념을 배우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한번 복습하듯이, 여행의 막바지에는 밖으로 에너지를 쏟지 않고 내면을 정리하고 여행을 갈무리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게된다. 밤에 침대에 누워서 밖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란의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유럽의 전반적인 특징이라면 대체로 창문에 방충망이 없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날씨에 비해 벌레나 모기가 별로 없고 모기가 있더라도 끈질기게 물어대질 않는다. 그래서 한 두방 정도 물릴 각오하면 편하게 잘 수 있다. 벌레가 있어봤자 이제는 별로 신경도 안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