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수리비와 험난한 산길, 엘바산 가는 길
[유럽 자전거 여행] #43 티라나에서 예상치 못한 자전거 수리비 140유로를 지출하고, 잘못 든 산길에서 조난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엘바산 근처 캠핑장에서 호주 캠퍼가족을 만납니다.
2025.06.02
일단은 내륙으로 들어가보자는 마음을 먹고는 엘바산이라는 마을을 오늘 목적지로 설정했다. 오늘 엘바산에 도착하면 내일은 북마케도니아 국경에 걸쳐져있는 오흐리드라는 큰 호수에 도착할 수 있다.
며칠 전 자전거 기어 변속 케이블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출발하기 전 그걸 수리하러 티라나에서 자전거샵에 방문했다. 자전거 체인 수명이 일반적으로 3-5,000키로 정도되는데 내가 6,000키로를 탔으니 체인 수명도 체크해달라고 했다.
체인을 교체해야한단다. 좀 더 저렴하고 내 자전거에 알맞는 시마노 체인이 없어서 더 비싼 스램 체인을 써야한다는데 체인 값만 55유로란다. 여기가 알바니아 수도에서 제일 큰 바이크샵이니 아테네까지는 여기보다 더 좋은 바이크샵을 찾기 힘들거 같아서 체인을 교체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체인을 교체하면 뒷바퀴 스프라켓의 마모정도 때문에 문제가 생길거라고 한다. 인터넷에 알아보니 체인을 두번 바꿀 때 스프라켓을 한 번 교체하는 게 정석이라고 하니 그러라고 했다. (+35유로)
교체하고 나서 타보니 뭔가 끼릭끼릭 거리는 느낌이 느껴진다. 왜 이러냐고 물어보니 한참을 보더니 앞바퀴 체인링도 마모가 돼서 교체해야한다고 한다. 체인링은 일반적으로 2만 키로 정도에 교체한다는데 나는 아직 그 절반밖에 타지 않았다. 하지만 잘 모르니 어쩌겠는가, 한숨을 쉬며 교체해달라고 했다. 내 자전거에 맞는 체인링이 없어서 근처 모든 바이크샵에 연락하고 직접 갔다오는 모습을 보니 거짓말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총합 140유로를 결제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약간 눈탱이 맞은거 같기도 하다. 정보의 비대칭에 의한 여행세금이다.
소위 말해 여행 짬밥 좀 먹었다 하는 사람에게서 자주 보게 되는 불쾌한 태도가 한가지 있다. '여행 중에 국경 검문관에게 돈을 뺏겼다.(몇천원 ~ 2만원 수준)', '애매하게 많은 수리비를 청구받았다', '시장에서 물건을 좀 비싸게 샀다.(몇 백원~몇 천원)'같은 관광객 프리미엄에 대한 일화를 공유하면, 그 사람들은 '순진하게 그런걸 당하냐'라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식의 태도는 대화의 초점을 사건에서 사람에 대한 능력 평가로 이동시킨다. 문제의 원인을 구조와 상황보다는 한 개인의 능력 결함으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이 때는 여행자로서 바가지를 씌였다라는 사실보다도 그 사람의 태도 때문에 기분이 훨씬 더 상한다. 일종의 우월감의 표현이다.
아무튼 고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자전거를 고치는 동안 나는 여기서 망치를 하나 빌려서 휘어버린 텐트 펙을 펴려고 웬종일 두들겼다.(그래도 안펴짐)



너무 오래 걸려서 오후 1시가 넘어서 출발했다. 엘바산까지 50km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오르막을 감안하면 오후 5시 안에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실수한게 있었다.
GPS 경로설정을 잘 못해서 포장도로가 아닌 완전히 산길로 들어갔다.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갔는데 내리막에서는 아예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걷기도 힘든 돌길이 나와서 자전거를 계속 끌고갔다. 진짜 여기서 조난 당하는 줄 알았다. 등산로에 자전거를 타고 온 격이다. 길을 못 찾아서 나침반 까지 봤다. 가는 길에 너무 힘들어서 길가다가 농사짓는 할아버지가 한 분 보이길래 그 곳에 텐트를 치고 자도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말은 안통하고 자꾸 저 위쪽을 가르키면서 저 위에서 뭔가가 내려와서 나를 죽일거라는 그런 제스쳐를 취한다. 짐승이 출몰하는 곳인가 싶어서 일단 자리를 떴다.






어쩔 수 없이 목적지까지도 도착 못하고 엘바산 초입에 있는 한 캠핑장에서 12유로나 주고 묵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거기서 1년 넘게 캠핑 여행 중인 호주 가족을 만나서 얘기도하고 맥주도 얻어먹었다. 엄마, 아빠, 어린 딸과 어린 아들. 4인 가족인데 1년 넘게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며 전세계를 캠핑하며 돌아다닌다고 했다. 이런 예상치 못한 만남이 여행의 재미다.
저녁도 같이 먹자고 했는데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건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