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천사가 와락 나를 가슴에 끌어안으면, 나보다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 텐데.
[유럽 자전거 여행] #40 2025.05.28-29 몬테네그로 코토르(Kotor) 만 옆 로브첸 국립공원을 넘습니다. 해발 0m에서 시작되는 25개의 굽잇길, 코토르 서펜타인을 정복한 뒤 마주한 스카다르 호수의 비현실적인 풍경을 기록합니다.
2025.05.28
어젯밤 오늘 가야하는 루트를 확인해보았다. 어제 캠핑장에 진입하면서 보고 감탄했던 바로 그 멋진 산. 그게 바로 내가 오늘 넘어야할 산이되겠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매일매일 내가 가는 루트의 명소나 유명한 곳들을 미리 알아볼 수는 없어서 아무 정보 없이 그냥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자주 ‘와 저기는 정말 멋지다.’라고 감탄했던 곳이 그 곳의 이름난 명소인 경우가 많았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그 명소들을 마주할 때도 그 장소에서 특유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이미 그 곳에 대해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있다가 갑작스레 마주하는 것. 전자에선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고 후자에선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투어 가이드에게 자세히 설명을 듣고 블로그에서 이미 후기도 빠삭하게 읽고 난 후에 간 여행지에서 내가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건 없다. 이미 남들이 느꼈고 마땅히 느껴야할 감정을 나도 똑같이 느낄 뿐.
반면 후자에선 명소를 소비하지 않는다. 내 인식으로 풍경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 자체의 압도감이 나를 먼저 붙잡아버린다. 그 풍경은 돌연 나타나 감탄을 유발하고 자기 존재감을 과시한다.
오늘도 그랬다. 며칠 뒤에 검색한 뒤에 알게된 사실인데 이 곳 코토르만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지구가 태어날 때, 육지와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몬테네그로의 해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라고 극찬한 곳이다. 나는 그저 유로벨로8번 코스를 따라가다가 얻어 걸렸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의 특성상 이런 절경을 보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한다.




오늘은 코토르만 옆 로브첸 국립공원 산을 해발 거의 0m부터 1,047m 까지 쭉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이 곳은 코토르 서펜타인(Kotor Serpentine)이라고 불릴 정도로 serpentine(뱀처럼 구불구불한) 구불구불한 헤어핀 도로가 특징이다.
헤어핀 도로가 있다는 건 산지라는 뜻이고 여기처럼 헤어핀 커브가 많아지면 경사가 줄어든다. 그래서 엄청 높이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끌바를 한 번도 하지 않고 계속 자전거를 탔다.
올라가는 길에도 만난 자전거 여행자들을 꽤 만났다. 유럽에서 내가 본 장거리 자전거 여행자들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 고독한 상남자와 부부 여행자. 두 부류에서 느껴지는 바이브는 확실히 다르다. 상남자에게선 고독의 냄새가 진하게 나고 후자들은 매우 친절하다. 오늘은 두 부류를 다 만났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후자의 여행자와 대화를 많이 나눴고 전자의 여행자와 정상에서 콜라를 같이 마셨다.
대화를 나누면서 겨우 도착했다. 몬테네그로는 대체로 길이 좋은데, 일단 전체적으로 자전거를 탈만한 경사이다. 그래서 오늘 끌바를 거의 안하고 계속 올라갔다.




정상의 풍경은 가히 압도적이다. 바이런의 말이 맞다. 다시
지구가 태어날 때, 육지와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몬테네그로의 해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내려가면서 나온 세티네라는 마을 식당에 들러서 음식도 사먹었다. 서유럽이라면 기본 20-30유로씩 나올만한 식당이 여기서는 10유로 이하로 즐길 수 있다. 드디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건가.


잽을 몇 대 맞다가 어퍼컷을 한대 맞아야 하는데 오늘은 라이트 훅을 맞고 곧이어 어퍼컷을 맞았다. 풍경 2연타다. 내리막을 내려가서 캠핑장 가는 길에 서울 면적의 0.78배라고 하는 스카다르 호수의 끝자락 풍경이 펼쳐졌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볼법한 풍경이다. 내 전두엽이 불탄다. 나는 한 번에 이만한 새로운 자극 정보를 처리할 뇌 용량이 없단말이다.
2026.04.11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 줄까? 한 천사가 와락
나를 가슴에 끌어안으면, 나보다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 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 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
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기를, 냉정히 뿌리치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김재혁 옮김, 민음사, 2023.
몬테네그로는 자전거 여행을 관광 자원의 한 축으로 밀고 있는 나라다. 국가 관광 쪽에서 아예 GPS, 지도, 자전거 가이드북 정보를 준다. 그래서 오늘처럼 아름다운 자전거 길이 많나보다.


스카다르 호수는 길이 좀 험하다. 옆이 낭떨어지, 사람없는 곳에서 혼자서 자전거를 타는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일상에서 이런 종류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이겨내는 상황은 기껏 생각해봐야 몇년마다 한 번 놀이공원을 가서 롤러코스터를 탈 때 분이다.
여행하면서 내가 압도되는 순간, 장엄함과 숭고함을 느끼는 순간은 말하자면 메멘토 모리의 순간. 죽음의 느낌과 멀지 않다. 이 압도적인 풍경은 입김 한번으로 나를 '무(無)'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느낌 없이 그저 장엄한 풍경만 감상하겠다는건 오르막 없이 내리막만 내려가겠다는 말. 자연 법칙 위반이다. 내 스트라바 글에 댓글을 보니 자전거 여행자들은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보다.





알바니아로 가면 개가 사납다고해서 무기도 하나 만들었다.
호수 근처 캠핑장이라 다소 습하다. 캠핑장엔 거북이도 살고 두꺼비도 산다.
2025.05.29
블로그 글을 쓰며 하루 쉬었다. 습해서 그런지 각종 곤충과 동물이 많다. 뉴질랜드에서도 느꼈지만 자연이 보존된 곳, 청정구역이라 하는 곳은 인간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들이 많다. 이름모를 날벌레와 과하게 살아있는 식물들, 징그러운 곤충, 예측 불가의 동물, 젖은 흙냄새와 썩은 잎 냄새가 섞인 공기, 신발 바닥에 들러붙는 진흙, 거미줄, 정체모를 울음소리, 습기 먹은 옷, 물 웅덩이 주변의 미끈한 감촉.
너무 많은 것들이 살아있어서 그렇다.





온갖 곤충이 무지하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