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해를 건너 발칸으로: 안코나 항구의 긴 기다림과 설레는 승선
[유럽 자전거 여행] #34 2025.05.21 이탈리아 안코나 항구에서 크로아티아행 페리를 타고 아드리아해를 건넌다.
2025.05.21
베트남 해안가에서의 강한 역풍, 어제 해안가 도로의 부정적인 경험 때문에 나는 그냥 해안가도로랑 잘 맞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도로 사정도 어제보다 훨씬 낫고, 순풍이 부는데다 큰 휴양도시도 없으니 꽤 괜찮다.
배 출발 시간이 19:30분이니 시간이 넉넉하다. 며칠 전 아마존으로 핸드폰 충전선과 정수기 물통을 하나 주문했었다. 저번에 데카트론에서 우연히 보고 충동구매한 MSR 트레일샷 필터가 바이러스까지 제거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마존으로 그레일 울트라 프레스를 구매했다. 두개가 있으면 녹조가 심한 정체된 하류의 물이나 하수도 물 말고는 웬만한 물은 전부 마실 수 있다.

그냥 사고싶었다. 1
이것도 그냥 사고싶었다. 2





아마존 락커에서 주문한 물품을 수령하고는 근처에 케밥을 먹으러 갔다. 여기 안코나는 유독 흑인들이 많이 보인다. 항구도시라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이나 난민이 이곳에 많이 정착해 있는 탓이다. 케밥을 먹는데 바지를 허벅지까지 내려입은 웬 흑인 남자 한명이 껄렁껄렁하게 나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요’하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러고는 저 밖에 자전거가 니 자전거냐고, 혹시 먹을 것 좀 없냐고 물었다. 순간 무서운 느낌이 들어 먹을게 없다고 하니 주위를 좀 어슬렁 어슬렁 거리더니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혹여나 자전거를 훔쳐가지 않을까 싶어서 자전거도 계속 예의주시했다.
태도가 상당히 특이했고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워서 생각을 못 했었는데 이 친구가 만약 불법 난민이라면 여기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을 거고 진짜로 배가 너무 고파서 나에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리가 아는 구걸하는 거지는 저렇게 당당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보통의 거지는 상대방에게 구걸을 할 때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거지로서의 연기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럼으로서 상대방의 동정을 사서 원하는 돈이나 음식을 얻어낸다. 내가 만난 우리나라의 거지들도 그랬고 동남아에서 수도 없이 만났던 거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배고픈 거지일지라도 그 태도 속에는 일종의 연출이 있다.
하지만 오늘만난 이 흑인은 달랐다. 배는 고픈데 거지로서의 연기까지 해내기에는 자신의 자존심이 너무 상하나보다.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니 이 친구에게 다가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웜샤워를 비롯한 길거리의 천사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었나.
바로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서 저 멀리있는 흑인 친구를 붙잡았다. 'Are you hungry?'라고 하니 'Yes, I'm hungry'라고 했다. hungry라는 단어의 울림 속에 그의 배고픔이 절절히 느껴졌다. 따라오라고 해서 다시 가게로 돌아가 7유로 짜리 케밥과 콜라를 하나 사줬다. 터키 사람으로 보이는 주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흑인 친구는 감비아에서 왔다고 한다. 나이는 가늠이 안되지만 십중팔구 나보다 어린 나이일 것이다.



케밥을 든든히 먹고 바로 항구로 향해서 표를 구매했다.(90유로) 배가 출발하는 19시 30분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자전거로 항구 주위를 둘러보았다.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는 건 처음이다. 배를 타기 전에 비행기를 타는 것처럼 여권검사를 했다. 우리가 일본으로 여행가는 것 같이 설레보이는 유럽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긴 대기시간 끝에 배를 타고 드디어 크로아티아로 향한다.





잘 있어라, 서유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