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무덤과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라벤나(Ravenna)에서 마주한 전설들
[유럽 자전거 여행] #33 이탈리아의 라벤나를 지나 아드리아해와 만난다. 라벤나에서 본 단테의 무덤과 프란체스코 성당
2025.05.19
잠을 푹 자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겁이 많아서 이런 도로 옆 개활지에서 마음 편하게 못 잔다. 아침 5시 20분 정도가 되면 해가 뜨는데 여기는 자전거 도로라서 아침 6시 30분 정도가 되니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다행히 다들 웃으면서 인사하고 간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자전거 여행자에 대한 인심이 후하다.


오늘 자전거를 타며 어제 만났던 소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 아이를 믿지 못했고, 결국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람을 경계하는 것과 그를 완전히 위험한 존재로서 굳혀버리는 일은 같지 않다. 정말 어려운 것은 나를 두렵게 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그들을 하나의 위험으로만 환원하지 않는 일이다.
이들을 사랑하는 일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내 취약성을 전부 드러낸 채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 그들을 내 집 안방으로 들이는 것은 이웃 사랑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일 것이다. 이것은 니체가 말한 ‘노예의 도덕’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종류의 사랑이다. 예수가 바로 이런 사랑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 북동쪽, 아드리아해와 면한 포강 유역의 지역을 에밀리아 로마냐라고 부른다. 첫 인상은 태국의 이싼지역의 느낌이었다. 언덕하나 안보이는 광할한 평야, 끝도 없이 펼쳐진 논, 내리 꽂는 햇살, 풀냄새. 이상하게 자꾸 이탈리아에 와서 태국 생각이 난다. 이상하게도 내 향수병의 방향이 한국이 아니라 자꾸 태국으로 향한다.




이탈리아에 와서 특히 좋은 점은 두가지다. 햇살이 좋고, 커피가 저렴하다. 다른 서유럽 국가에 있을 때 카페에 가서 커피를 돈내고 사먹은 적이 세 번은 있었던가? 아니, 한 번인가 두 번밖에 없었던거 같다. 그런데 여기 커피는 맛있으면서 가격도 저렴하다.
평야를 신나게 달리며 Ravenna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원래 이 도시 안으로 굳이 들어올 생각이 없었는데 여기에 단테의 무덤이 있다고 해서 들어왔다. 무료로 구경할 수 있는 곳만 둘러보고 성 프란치스코 성당도 들어가봤다.







시성(詩聖) 단테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를 뵈옵니다.
구경을 마치고 마트에서 음식을 사서 캠핑장으로 왔다. 캠핑장에서 내 또래 자전거 여행하는 유럽 남자를 한명 만났는데 국적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독일이었던거 같다. 동남아에서는 내 외모가 워낙 현지인처럼 보여서 서양 사람들이 나를 그저 배경으로서 지나가는 한 사람으로 본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유럽에서는 이 사람들의 태도가 분명 다르다. 여기 사람들은 나를 한 명의 동등한 인간으로 보고 대화를 한다는 느낌이 있다.

라면에 저 고기를 넣어서 끓여먹었는데 요근래 먹은 음식 중에 으뜸이었다.
2025.05.20
21일날 저녁에 이탈리아 안코나에서 크로아티아 스플리트로 가는 배를 탈 예정이다. 하지만 평일이고 완전 극 성수기는 아니어서 배 편을 굳이 예약을 해놓지는 않았고 직접 가서 오프라인으로 표를 구매할 생각이다. 안되면 그 다음날 가면된다.
오늘은 해안선 루트를 따라 Rimini라는 도시를 지나서 Pesaro 부근의 캠핑장으로 갔는데, 특히 바닷길을 따라가는 게 정말 힘들었다. 내륙의 둥근 형태의 도시를 벽에 대고 꾹 눌러서 짜부시켜 길쭉하게 만들면 바닷가 도시가 된다. 원래 도시 안에는 차, 사람, 신호등이 많아서 자전거를 타기가 힘든데 바닷가 마을은 자전거 타기 힘든 구간이 더 길어진다.(짜부가 되어서 도시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해안가 도로는 보통 차량 통행량도 많고 게다가 여기는 이탈리아 아드리아해의 유명 해양 휴양지가 모여있는 곳이라 더 힘들었다. 자동차의 고속도로 주행과 시내주행의 연비가 차이가 많이 나듯, 자전거도 똑같다.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
관광지도 싫은데 휴양 관광지는 정말 자전거 여행으로서 최악이다.
내가 본 유럽의 캠핑장의 특징이라고하면,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어르신들이 캠핑카를 가져와서 의자와 테이블을 펴두고 느긋하게 앉아서 쉰다. 그리고 때가 되면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곁들여서 음식을 먹는다. 우리나라는 젊은 사람들끼리 혹은 가족들끼리 와서 왁자지껄 떠들면서 노는 캠핑 문화가 있다면 유럽은 어르신들이 자연 속에서 조용히 며칠씩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었다.
항상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생각한다. 유럽의 젊은 사람들은 어디갔을까? 좀 더 거칠고 도전적인 곳으로 갔을까? 백패킹 혹은 쓰루하이킹을 도전하러 갔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