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철길을 달리는 자전거: La Lunga Via delle Dolomiti, 코르티나담페초를 향해서

[유럽 자전거 여행] #28 2025.05.13 이탈리아 돌로미티의 핵심도시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로 향합니다. 옛 철로를 개조한 자전거 길 위에서 생경한 절경을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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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철길을 달리는 자전거: La Lunga Via delle Dolomiti, 코르티나담페초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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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3

늘 그렇듯 이런 개방된 장소에서 캠핑을 할 때 최대 단점은 바로 일찍 자리를 떠야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텐트는 빨리 철수해야한다. 안 그러면 아침부터 산책하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계속 싸워야한다. 늦잠은 못잔다.

오늘은 돌로미티의 핵심 도시 코르티나 담페초로 간다. 어제부터 이 근처에 캠핑장 이름을 찾아볼 때 유난히 Olympia라는 이름이 많더라니. 알고보니 이 도시는 내년에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도시라고 한다.

날씨가 완벽하진 않아도 구름이 없는 사이사이로 돌로미티의 자태가 드러나기도 해서 아름다운 풍경을 잘 감상하면서 달렸다. 어느샌가 이탈리아로 들어왔는데 역시나 국경을 넘었다는 인식은 하지 못했다.

가는 길에 몇 주 전에 여행을 시작한 자전거 여행자친구를 한 명 만났다. 장자와 그의 사상에 관심이 많은 친구인데 이탈리아 남부로 내려가서 시칠리아, 스페인을 지나서 아프리카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 친구와 함께 달린 코르티나 담페초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사진으로 담기지 않는 풍경은 카메라가 좋지 않거나 사진 찍는 실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쪽 지역은 내 폰 카메라로 담기가 힘든 곳이었다. 난생 처음 느끼는 독특한 바이브를 가진 산악지역인데 어떤 부분이 특별히 아름답다기보다는 그 곳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국적이다. 빙하가 녹은 녹색빛을 띠는 호수물이 흐르고 옆으로는 키가 크고 높게 뻗어있는, 우리가 북유럽이나 캐나다의 이미지를 상상했을 때 흔히 생각나는 그런 형태의 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그 뒤로 깎아지른 돌로미티의 지형이 360도 나를 감싸고 있다. 정말로 이 쪽을 지나가면서 입을 계속 벌리고 자전거를 탔다.

🎥 Flyover 경로 동영상 보기
이 구간이 그야말로 절경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내가 달린 길은 La Lunga Via delle Dolomiti와 거의 겹쳤다. 이 길은 옛 돌로미티 철도를 따라 만든 자전거길로, Dobbiaco에서 Cortina로 이어지는 구간은 숲과 터널, 교량과 설산 풍경이 이어지는 대표 구간 중 하나였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맛의 라이딩 감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옛 철로를 따라 만든 자전거길이어서 그런 거 같다. 시선 높이와 진행감이 자전거 길의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이때까지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다.

아름다움에는 두 층이 있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과 내면을 흔드는 아름다움. 많은 경우에 전자와 후자는 겹쳐있는데 여행이 길어지면서 나의 경우 두 개의 아름다움 사이에 이격이 발생했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새로움에 대한 감각이 많이 무뎌졌다. 넋을 놓고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 쉬지 않고 계속해서 등장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을 받아드리는 내면이 먼저 지쳐버린다. 눈은 여전히 감탄하지만, 마음은 예전처럼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데도 오히려 감동은 줄어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풍경이 덜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가 변했다.

여행 초기, 뉴질랜드의 통가리로산을 보면서 정신이 고양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그만큼 감탄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에 무뎌지는 것, 그것이 장기 여행이 치러야할 한 가지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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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쯤 캠핑장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오늘 쉬고 가기로 했다. 혹시나 일기예보가 바뀌어서 날씨가 갑자기 좋아지면 더 깊숙한 돌로미티 지역으로 들어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추울 때 보드카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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