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생일 만찬: 불닭까르보나라와 28,000원짜리 맥도날드 세트
[유럽 자전거 여행] #18 2025.04.26 - 28 유럽의 젖줄 도나우강(다뉴브) 자전거 길에 들어섭니다. 독일 울름에서 맞이한 고독한 생일, 독일인과의 대화, 텐트 위 이슬과 바람의 방향을 읽으며 터득해가는 '지구인으로서의 생존 지식'에 대한 기록
2025.04.26
유럽의 젖줄 도나우강(다뉴브강)을 따라가는 자전거 경로는 유명하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루마니아의 흑해까지 이어지는데 자전거 길이 잘 되어있고 중간에 캠핑장도 많다. 게다가 대부분 평지다. 일단 나는 이 길을 따라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까지 갈 생각이다.


유로벨로6 경로
자전거 여행을 할 때는 좋은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음식을 가방에 넣고 다녀야해서 신선식품은 오래 보관을 하지 못하기에 대체로 간편식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기를 섭취하려고 노력을 한다. 오늘 아침 올라프 아저씨에게 좋은 정보를 하나 얻었는데 독일의 소시지는 대부분 관리가 잘 되어있어서 요리를 안하고 먹어도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독일에서 자전거 여행은 수월한 편인듯 하다.









다뉴브강 곳곳에 자연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이런 곳에서는 더더욱 와일드 캠핑이 힘들다. 캠핑장 가격도 많이 비싸지 않으니까 규율이 엄격한 독일에서는 되도록이면 캠핑장을 써야겠다.
캠핑장에 도착했다. 유럽에는 식당과 캠핑장을 병행하는 곳이 많다. 식당을 차리고 그 앞 잔디밭이나 놀이터에 돈을 받고 텐트를 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화장실과 샤워실만 있으면 되니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오늘은 나 포함 세명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이 곳에서 잤다. 날씨가 조금씩 좋아지니 유럽 내의 단기 자전거 여행자들이 엄청 많이 보인다. 내 텐트 바로 옆에 여자 한명이 혼자 자전거 여행을 한다. 말을 걸어볼까 했는데 상당히 경계하는 표정이라 나도 그냥 무시했다.
잘 때 추위 때문에 계속 ChatGPT와 씨름하고 있다.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좀 더 따뜻하게 잘 수 있는지를 알아내고 있는 중인데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다. 알아낸다한들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게 힘이드니 괜찮은 장비를 사는 것도 일이다. 그냥 일회용 핫팩을 사면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모든 곳을 뒤져봐도 인터넷을 제외하고는 일회용 핫팩을 파는 곳이 없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쿠팡에 들어가서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될 일인데 말이다.

2025.04.27: 생일 🎁 (일요일)
오늘은 울름이라는 꽤 큰 도시를 거쳐간다. 울름 대성당을 밖에서 구경하고 울름 시내를 대충 구경한 다음 밖으로 빠져나왔다. 오늘은 내 생일이라 엄마가 맛있는 걸 사먹으라고 용돈을 좀 주셨는데, 한식당이 있으면 한식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큰 도시인 울름에도 한식당은 찾을 수 없었다.
독일 대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바로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다. 자전거길이 아닌 보행자도로를 조금이라도 침범하는 순간 바로 지팡이를 들고 자전거길을 가르킨다. 오늘 만난 할아버지는 웃는 표정으로 그랬다.
오늘의 목적지 캠핑장 가는 길에 있는 베트남 음식점이나 태국 음식점에 들러서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땐 태국, 베트남, 한국, 일본의 요리가 전부 다르지만 유럽에 오니 굳이 한식이 아니더라도 쌀을 기반으로 한 아시아의 요리 자체가 그립다. 우리나라가 유럽 요리를 한가지로 뭉뚱그려버리듯(양식) 서양사람도 아시아 요리를 한가지로 취급한다. 심지어 Aisan food 라는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들이 꽤 있는데 정체 불명의 아시아 느낌의 요리를 판다.




울름에 들어갔을 때 문을 연 레스토랑들이 조금 있었는데 그 곳에서 식사를 해결했어야했다. 유럽은 일요일에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 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특히나 독일은 더 심한 듯 하다. 정말 내가 간 대형마트며 카페, 음식점, 잡화점 모두 “closed”다. 찾아보니 국가에서 일요일과 공휴일에 강제로 휴식하도록 법을 제정한 듯 했다. 여행자에게는 불편하더라도 이는 독일 문화가 휴식을 얼마나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식으로라도 강제하지 않으면 돈을 벌기 위해서 한 두 명씩 가게 문을 열고 영업을 할거고 자연스럽게 어쩔 수 없이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는 한국식 자영업 문화가 스며들겠지. 우리나라는 외부의 강제가 없으니 스스로 자기자신을 착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맥도날드와 버거킹은 문을 열었다. 온 길을 조금 되돌아가서 맥도날드에서 28,000원을 주고 버거 세트와 치킨너겟을 먹었다. 일요일에 문을 여는 곳은 페스트푸드점과 주유소에 붙어있는 편의점 같이 자그마한 상점(비싸다.). 이 상점에서 불닭까르보나라(하나에 4,500원) 두 개를 사서 캠핑장으로 갔다. 내 생일 만찬이다.
내일은 하루 쉬어가야겠다.


생일 만찬이다


네덜란드 부부 자전거 여행자를 여기서 만났다. 나는 아테네로 갈거라고 하니까 반드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쪽 북유럽으로 올라가라고 한다. 아름답고 자전거 인프로가 굉장히 좋다며. 고민은 해봐야겠다.
또 다른 독일인 부부 여행자가 있었는데 엄청 외향적이다. 여기 저기 가서 이야기도 곧잘하고 잘 어울린다.(안경을 썼다.) 그 사람은 내가 사고 싶었던 써머레스트 네오에어 엑스라이트 에어매트리스를 쓰고 있는데 엄청 강추했다. 10년 썼는데 문제를 한 번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했다.
내 경험상 동남아에서도, 유럽에서도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조금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부 독일인이었다. 우연일테지만 신기하다.
독일인에게 받은 또 다른 인상이 있다.
원래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상대방이 나에게서 받은 인상 혹은 나의 특정 부분에 대해 의식하고 있으면 대화 중에 은연 중에 그 점이 느껴진다. '아 이 사람은 나를 동양인으로서 바라보고 있구나.' '이 사람은 나를 내 직업으로서 바라보고 있구나.' '이 사람은 내가 누구냐보다 내가 어떤 범주의 사람이냐를 더 궁금해하고 있구나.'
누군가는 나의 이런 지점이 과도한 자의식이라고 폄하할 수 있겠지만 느껴지는 걸 어떡하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문화권의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나는 종종 한 명의 사람이기 이전에 ‘어린 동양인 남자’라는 기표로 먼저 읽힌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리고 상대가 그 기표 뒤에 붙은 기의를 의식한 채 나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감지하게 된다. 실제 대화는 그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면 그 대화는 일종의 역할놀이가 된다.
하지만 내가 만난 많은 독일인들과 오스트리아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나를 한 명의 주체로 인식하는 느낌이었다. 사회적 맥락에서 벗어난, 개인 대 개인의 대화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이런 관계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묘하게 편하고 깔끔하다.
2025.04.28
다음날 간만에 해가 떴다. 거의 이주일 가까이 비가오고, 비가 오지않으면 흐린 날씨가 지속됐다. 오늘 여기서 쉬면서 빨래를 하려고 보니 세제가 필요하다.
캠핑장에서 보통 세제는 제공되지 않고 세탁기를 돌리는 비용은 동전으로 돈을 지불한다. 캠핑을 하다보면 지구인으로서의 지식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된다. 이전까지 아웃도어 활동에 문외한으로 살았어서 이 쪽으로는 지식이 전무했다.
여행 초창기 빨래를 하고 텐트 플라이 위에 널었다가 아침에 이슬 때문에 더 축축해져버린 경험 때문에 아침 이슬의 위력을 배웠다. 맑고 건조한 날엔 낮엔 뜨겁고 덥지만 밤엔 오히려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보다 더 춥다는 것도 배웠다.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아무리 좋은 침낭으로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사실과 바닥이 흙이냐, 잔디냐, 모래냐에 따라 잘 때 환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온도가 어떻게 되는지도 배웠다. 바람의 방향과 그 다음날 해뜨는 위치에 따라 텐트를 어디 어떻게 쳐야하는지도. 아, 물론 햇빛을 즐기는 법도 배웠다.
마을에서 세제와 오늘 먹을 음식들을 사와서 간만에 햇빛을 쬐면서 블로그를 쓰면서 쉬었다.
이 캠핑장에는 자전거 여행자들이 굉장히 많이 온다. 유럽에는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어르신들이 자전거 캠핑을 즐긴다. 사실 오히려 나이든 사람을 더 많이 봤다. 도로와 인프라가 워낙 잘 되어있어서 누구나 즐기기 쉬운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