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랄랄레로 트랄랄라: 12살 알바니아 소년의 칼날과 밤의 도주
[유럽 자전거 여행] #32 수도원의 청렴한 헌금 시스템에 깊은 인상을 받으며 길을 나섰으나, 목적지에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마주한다. 칼을 든 채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를 읊조리는 12살 이민자 소년의 예측불가능한 위협을 직감하고, 해 저문 밤 모든 짐을 싸서 강변 자전거길로 도주한다.
2025.05.18
오늘, 내일 달리면 해변가로 도착한다. 오늘 달리는 도착지 주변엔 캠핑장이 없어서 iOverlander로 와일드캠핑을 할 구역을 찾아놨다.
이 수도원에 머문 게스트들은 떠나기 전 보통 기부의 형태로 헌금을 하는데 놀라운 점은 누가 돈을 냈는지, 얼마를 냈는지를 아예 알 수가 없는 시스템이란 것이다. 그저 하얀 봉투에 일정 금액을 담아서 박스 안에 넣으면 된다. 나도 많지는 않은 헌금을 냈다. 가톨릭의 이러한 중앙집권적 재정 운영 덕분에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발적인 마음으로 헌금의 액수를 정할 수 있다. 어차피 사제나 신부님들, 관리하시는 분들도 중앙에서 내려오는 월급을 받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종교 단체가 정말로 구린 구석 없이 청렴하고 예수나 부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곳에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기부하려는 사람이 분명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특히 죽기 전) 중세의 수도원들이 이런 식으로 부유해졌다. 비록 이 때문에 타락했지만 말이다.


실내에서 자면 텐트를 말릴 필요가 없어서 일찍 출발할 수가 있다. 오늘은 8시 30분 정도에 출발해서 역시 수많은 유적지를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작은 카페 옆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인데 여기서 누가 캠핑을 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보조배터리로 핸드폰을 매일 충전한다. 그런데 자전거가 필연적으로 진동이 많다보니까 충전 라인이 자꾸 고장이난다. 가끔씩 라인이 자전거 페달에 말려들어갈 때도 있다. 오늘도 고장난 충전선을 구매하기 위해서 Rovigo라는 마을에 들렀다.
오후 세시가 되기 전에 내가 예정해둔 캠핑 장소에 도착해버렸다.동네 놀이터 같은 곳인데 해가 지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래도 몰래 구석에 의자를 펴고 해를 쬐면서 앉아 쉬었다. 영화도 보고 사람 없는 틈을 타서 파스타도 끓여먹었다.


하필이면 오늘 일요일이라 옆 가게에 손님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가게가 문을 닫으면 그 때 텐트를 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변수가 하나 생겨버렸다.
웬 꼬마 한명이 와서 그네를 타며 나에게 라이터가 있냐고 묻는다. 12살의 알바니아 이민자 소년인데 담배필 불을 나에게 찾고있다. 번역기로 대화를 좀 나누다가 이 친구는 집으로 돌아갔다.
9시 쯤 이제 슬슬 텐트를 쳐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이 친구가 다시 등장했다. 아무래도 부모님의 관리가 소홀한 집인듯 하다. 뭐하냐니까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서 논다고 한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시절의 아이들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잘 알고있다. 내가 어린 시절 우리 동네의 한 친구는 집에 가는 길에 상습적으로 돌을 던져 학교 창문을 깨고다녔고 하루에 한대씩 자전거를 훔쳤다. 그 친구는 최소 200대의 자전거는 훔쳤을 걸로 예상한다.
여기 텐트를 치면 저 나이대의 친구들은 분명 내 자전거나 텐트에 해코지를 할 것이 자명하다. 심지어 이 알바니아 녀석은 칼을 들고 있었고 그네를 타면서 칼로 땅을 긁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가장 괴이한 장면은 그 다음 이어지는데 이 친구는 요즘 유행한다는 ‘트랄랄레로 트랄랄라’ 밈을 연이어 남발했다. 인터넷에서만 이 밈을 접했을 때 나는 진짜 이탈리아 발음으로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를 연달하 하는 모습이 얼마나 기이한 모습일지 가늠조차 못 했었다.
바로 이거
10대 이민자 아이들의 예측불가능성은 거의 공포 그 자체다. 타국에 와서 이 아이들이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울분이 쌓여있을 지 나는 예상할 수 없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하고는 주저없이 모든 짐을 싸들고 자리를 떴다. 아무 길에서 자는게 훨씬 안전할 것이다. 무작정 길을 나서긴 했는데 해는 이미 졌고 어스름한 황혼의 빛만 남아있었다. 강 옆에 있는 자전거길로 향하면 대충 사람이 없는 구간이 나오겠지 생각하고 그 곳으로 향했다.
민가에 부탁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굳게 닫힌 철문을 보고는 마음을 접었다. 이건 최후의 수단이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자전거길 옆, 공터를 찾았고 거기에 텐트를 칠 수 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