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똥을 피해 텐트를 치고 두려움에 떠는 밤: 늑대야 오지마라

[유럽 자전거 여행] #51 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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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을 피해 텐트를 치고 두려움에 떠는 밤: 늑대야 오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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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3

여기서부터 아테네까지가 좀 문제다. 4일 정도 걸릴거 같은데 캠핑장이 하나도 없다. iOverlander로 찾아보니 와일드캠핑을 할만한 곳이 두군데 보인다. 일단 가다보면 해결되겠지.

iOverlander로 우리나라 서울부터 부산까지 국토종주 코스를 살펴보면 와일드캠핑 할 장소가 무지하게 많다. 우리나라로 저전거 여행을 하러 오는 외국인들이 꽤 많은데 그 사람들이 친절하게도 자기들이 어디서 몰래 잤는지 상세하게 표시를 해놓았다. 하지만 그 경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으로 경로를 짜면 그런 정보가 거의 없다. 내가 지금 그리스에서 가는 길이 이와 비슷하다.

오늘 찾은 곳은 Smokovou라는 인공호수 옆에 있는 장소인데 이 곳에 가기 위해선 오르막을 꽤나 올라야한다. 그리스에는 상점이 별로 없어서 물을 사는게 어렵다. 오늘도 작은 마을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근처에 수퍼가 열려 있으면 물을 사려고 했는데 모두 닫혀있었다. 정수기 필터가 달린 물통을 챙겨오지 않았으면 진짜 위험할 뻔 했다.

날 괴롭히지 마라 개들아.

내가 잘 곳은 메인도로에서 꽤나 많이 떨어진 곳인데 무척 외딴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자려고 한 곳에는 어떤 동물들의 배설물이 여기저거 보이는데 와일드캠핑을 할 때는 이 배설물이 어떤 동물의 것인지 구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인터넷에 검색해보고나서야 그저 소똥임을 알고는 안심을 했다. 사진으로 보면 평화롭고 깨끗한 천연 자연 안에서 힐링 캠핑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똥을 피해서 텐트를 치고 모기와 이름모를 수많은 벌레들과 싸우면서 캠핑을 해야한다. 더러움이 없는 곳은 인공적으로 만든 캠핑장 뿐이다.

텐트를 치고 물을 좀 뜨고 몸을 씻으려고 내려가보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리스인 친구들 세명이 낚시를 하고 있다. 그 중 한명의 이름이 또 공교롭게도 알렉산드로스다. 여기서 도대체 몇 명의 알렉산드로스를 만났는지 모르겠다.

내 볼일을 보고 난 텐트 옆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그 친구들이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자기들이 잡은 커다란 물고기를 손에 잡고 흔들며 나에게 자랑을 하며 돌아간다. 웃긴 애들이다.

오늘은 내가 가장 두려움에 떨면서 잔 날이다. 여기보다 더 위험해보이는 곳에서도 잔 적이 좀 있을텐데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무서웠다. 사실 우리 인류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의 캠핑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이유는 진화심리학적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한 두려움이 아예 없는 인류는 진작에 멸종했으리라.

아래 사진을 보면 보이는데 내가 오늘 잔 곳은 서쪽으로는 아그라파·핀도스 쪽으로 이어지는 더 험하고 깊은 산악권, 동쪽으로는 파르살라 쪽의 더 열리고 인간 거주 흔적이 강한 공간. 내가 잔 곳은 그 둘 사이의 공간이다. 중앙 그리스 도모코스 일대에서는 늑대의 활동과 먹이 습성이 연구로 확인되었다. 확률을 낮아도 여기는 늑대가 존재하는 곳이다.

자는데 들리는 부스럭소리, 풀벌레 소리에 떨면서 숙면을 취하진 못했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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