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나그네여, 가서 스파르타인들에게 전해주시오. 우리가 그들의 명령을 이행하고 이곳에 누워 있다고.

[유럽 자전거 여행] #52 20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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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나그네여, 가서 스파르타인들에게 전해주시오. 우리가 그들의 명령을 이행하고 이곳에 누워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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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4

어제 무서워서 숙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 아침에 얼른 텐트를 철수하고 출발했다.

오늘은 에게해와 만나는 날이다. 그리스의 우측편에서 에게해를 건너가면 터키가 나온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다. 군대에 있을 때 운이 좋아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다. 그 때 수많은 고전을 읽었는데 그리스 비극과 신화, 일리아스, 헤로도토스의 역사 같은 책들도 많이 읽었다. 그 때 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지도를 항상 펴놓고 비교하면서 책을 읽은 터라 이쪽 지역이 나에겐 꽤나 익숙하다.

Encyclopaedia Britannica, “ancient Greek civilization,” Britannica,

오늘 목적지는 그리스 정교회의 작은 예배당 뒤에 있는 공터이다. 역시나 iOverlander를 통해서 찾았다. 근처 작은 마을에 그리스 정교회 예배당이 하나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부속으로 딸린 곳 같았다.

자전거 여행 시 노지캠핑(iOverlander 앱)
[자전거 여행] #02

가는 길에 그리스의 전설적인 장소인 테르모필레 전투 장소를 지나갈 예정이다. 영화 300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장소.

테르모필레 전투

테르모필레 전투는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벌어진 전투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이끄는 그리스 연합군은 좁은 협곡인 테르모필레에서 훨씬 더 큰 페르시아군을 막아섰다. 지형 덕분에 수적 열세를 어느 정도 상쇄했지만, 결국 우회로가 적에게 알려지면서 포위되었다.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타 병사들, 그리고 일부 동맹군은 끝까지 남아 싸우다 전멸했다.

군사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승리였지만, 이 전투는 이후 그리스 측 사기를 크게 높였고, “압도적인 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저항”의 상징으로 남았다.

이정표에서는 달콤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아테네와 이 테르모필레 전투 지역을 10년 넘게 동경해왔다. 아테네라는 글자 그 자체가 내게 주는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올림푸스 신전에 그리스 신들이 모여 왁자지껄 연회를 즐기고 있을 것만 같고 소크라테스가 아고라를 거닐며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다닐 것만 같다.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플라톤과 여기 저기 관찰하고 다니는 아리스토텔레스. 길바닥에 누워있는 디오게네스도 떠오르고 아레오파고스에서 설교하는 바울의 모습도 그려진다. 이정표만 보아도 그 이미지가 나에게 한번에 밀려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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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을 다시 나타나게 하려면 단지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발베크, 베네치아, 피렌체 같은 이름 안에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장소들이 불러일으킨 욕망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봄에도 발베크라는 이름을 책 속에서 발견하기만 하면, 폭풍우와 노르망디의 고딕 양식에 대한 욕망을 내 마음속에 눈뜨게 하는 데 충분했고, 폭풍우가 부는 날에도 피렌체 또는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태양과 백합, 총독 궁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 대한 욕망을 일깨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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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욕망하는 고장들은 매 순간 우리 진짜 삶에서 우리가 실제 몸담고 있는 고장보다 훨씬 더 넓은 장소를 차지한다. 내가 피렌체, 파르마, 피사, 베네치아에 간다는 말을 했을 때, 만일 내가 내 생각 속에 들어 있는 것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감미로운 것, 이를테면 자신의 모든 삶이 이 겨울날 오후가 끝날 무렵에 시간 속에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에게, 저 찬란한 미지의 것, 봄날 아침과도 같은 그 무엇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가는 길에 배가 고파서 음식점에 들렀는데 미국 노부부가 나를 보고 무척 신기해했다. 노부부는 나에게 이렇게 여행하는 사람을 처음 본다고 했다. 나는 '엥?'하며 나는 나처럼 여행하는 숱한 서양인들을 만났다고 말하니, 그분들은 '이렇게 여행하는 동양인은 처음본다.'라고 정정했다. 음식점 안에 사람들도 인상깊다. 동네에서 희히덕거리면서 노는 아저씨들이 한 무리 앉아있었는데 나에게 자꾸 장난을 친다. 사실 이런게 일종의 인종차별인데 나는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상대방에게 악의가 없는 것이 느껴지고 실제로 나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

서유럽에선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이런 식의 장난기 가득한, 어떻게 보면 무례한 타인종에 대한 대우가 엄격히 금지되는 분위기다. 거기서는 아무도 여기처럼 이런 식의,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의 날 것 그대로의 행동을 적어도 대놓고는 하지 않는다. 그리스는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이긴 한다. 같이 한바탕 웃고나서 나는 테르모필레 전투를 한 곳으로 향했다.

21살 때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으면서 내 가슴을 뛰게 한 구절이 있다. 나는 이 구절이 적힌 돌판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장면을 정확히 2016년부터 상상했었다.

이곳에서 전에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4,000명이 3백만의 적군과 맞섰노라.
지나가는 나그네여, 가서 라케다이몬인들에게 전해주시오. 우리가 그들의 명령을 이행하고 이곳에 누워 있다고.

내가 두 번째 문장을 살면서 몇 번이나 읊조렸는지 감히 세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미지의 세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 자전거 여행을 하는 중에 수시로 상상했던 장면들이 있다. 알프스를 마주하는 상상, 올림포스 산을 오르는 상상, 그리고 테르모필레 전투 지역에서 이 문구가 적힌 돌판을 보는 상상. 내 상상 속에 이 돌판은, 안개가 자욱하고 빽빽한 숲에 그늘이 진 곳에 이끼가 잔뜩 낀 채로 존재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마주한 돌판은 6월의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에 잘 모셔져 있는 돌판이었다.

도달하지 못한, 혹은 도달하지 못 할 저 먼 곳에는 거리의 아우라가 생겨나고 그 빈자리를 욕망과 상상력이 채운다.

실제로 과거로부터 비석에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는데 과거에 파손이 되고 최근에 다시 돌판에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가서 라케다이몬인들에게 전해주시오. 우리가 그들의 명령을 이행하고 이곳에 누워 있다고.

테르모필레 전투 지역, 이 곳도 내가 상상했던 곳과는 많이 달랐다. 영화 300을 본 경험으로 생각했을 때 나는 이곳이 숲이 우거진 곳, 웅장한 절벽이 있는 협곡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름이 테르모필리아 '협곡' 전투이지 않은가. 알아보니 실제로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바다와 산 사이가 훨씬 좁았지만 오랜 세월 강의 퇴적이 쌓이면서 해안선이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로 예전에 있었던 좁은 길목은 사라지고 지금은 훨씬 넓은 평야처럼 보이는 지역이 남았다.

하지만 바로 옆엔 지금도 뜨거운 유황온천이 흐르고 있어서 거기서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자전거를 좀 더 밟아 오늘의 목적지인 예배당에 도착했다.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정교회 정체성이 상당히 강하다. 이곳은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이란 느낌보다는 상징적인 사원과 같은 느낌이었다. 내부에는 정교회 장식품들이 많이 걸려있고 깔끔하게 정돈된 것으로 보아서 누군가가 항상 정성들여 관리하는 모양이다. (내일이 일요일이었는데 아무도 여기서 예배를 드리진 않았다.)

이 곳 뒤에는 돌 탁자도 있고 수돗물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인적이 많지는 않아서 재빨리 옷을 벗고 샤워도 할 수 있었다.

바로 뒷집에 양을 치는 할아버지가 양떼와 개를 몰고 나와서 풀을 먹이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그 분이 이 교회를 관리하시는 분 같은데 나를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대신 개들이 텐트안에 있는 나를 호기심 가득한 소리를 내며 격렬히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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