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 고원을 지나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으로 : 메테오라 입성기
[유럽 자전거 여행] #49 2025.06.11 야생 목축업의 현장 같은 그리스 고원에서 2km를 추격해오는 개들을 따돌리며 페달을 밟았습니다. 원피스 주제가 '우리의 꿈'을 동력 삼아 첩첩산중을 지나고, 단숨에 1,000m를 내려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메테오라에 도착했습니다. 신화 같은 풍경 뒤에 찾아온 지중해의 찜통더위와 캠핑장에서 보낸 여행의 갈무리
2025.06.11
아침에 뿌연 안개와 함께 찌뿌둥하게 일어났다. 다행히 나는 살아남았고 나무 한그루는 거의 전소되었다. 아침 일찍 소방차 한대가 오더니 드론을 날려서 산 상황을 파악한다. 나는 할일을 다했다. 오늘은 그리스 산지를 벗어나서 메테오라로 향한다. 루트를 살펴보니 마냥 내리막은 아니고 업다운이 심한 날이 될 예정이다.
어제 내가 잤던 곳부터 수십키로 인근은 고산지대 임에도 불구하고 평지, 즉 고원이다. 양과 소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마치 그리스 신화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뉴질랜드에선 정돈된 목축업을 경험했다면 여긴 야생 목축업 그 자체다. 곳곳에 양치기 할아버지들과 양치기 개들을 볼 수 있다.
오늘은 2km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달려와 뒤꽁무니까지 추격해오는 개들을 따돌린다고 페달을 무자비하게 밟았다. 진짜 식겁했다.




고원은 평지지만 특유의 느낌이 있다. 더 높은 산이 거의 보이지 않고 약간 서늘한 공기 같은 것들 말이다. 높은 곳에 있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는게 있는데 고원에서도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게다가 식생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그리스에서, 사람은 보이지 않고 동물과 산, 초원밖에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원피스 주제가 ‘우리의 꿈’. 진짜 용기가 생긴다.
남극탐험을 도전하고 아무 장비없이 수백미터 절벽을 기어오르고 히말라야를 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껏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그 사람들이 큰 성취감을 느꼈었겠거니하고 잠깐 상상해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저 성취감이라는 단어로만 뭉뚱그리기에는 그 감정의 깊이가 너무 깊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가 말한 몸의 철학, 그러니까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은 생각 이전에 몸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그 철학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얕게나마 이해가 된다. 추상적인 표현으로는 몸이 느끼는 이 감각을 설명해내기 힘들다. 그의 말대로 몸은 우리가 세계를 가지는 매개다. 어떤 감각은 생각보다 먼저 몸에 도착하고, 언어는 늘 그 뒤를 따라온다.
인적이 거의 없는 첩첩산중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건 아스팔트 뿐이다. 아스팔트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광할한 숲 안에서 인간이 침투한 공간이다. 무한의 공간을 우리의 정신이 이해할 수 있는 유한으로 축소시킨 공간이다. 차 한대도, 사람의 인기척 하나도 없는 이 숲 안에서 나는 아스팔트를 달리며 안정감을 느낀다. 적어도 이 도로에는 곰이 튀어나오지 않겠지, 뱀이 나를 습격하지 않겠지 하는 안정감. 참고로 그리스 산악지역에는 곰이 서식한다.







어느 순간부터 무한 내리막이다. 주변 나무의 종류와 모양새가 실시간으로 변한다. 한번에 1,000m 가량을 내려오니 기온도 순식간에 올라갔다. 저 멀리 메테오라가 보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기암 절벽 위에 수도원이 세워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들이라 불리는 메테오라. 장관이다.
메테오라는 세계적인 관광지여서 외진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캠핑장이나 호스텔이 많다. 호스텔은 비싸서 패스하고 캠핑장에 묵었다. 진짜 너무 덥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