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라는 사치: 비 내리는 알프스 골짜기, 할슈타트를 등지고 찾아낸 안식처
[유럽 자전거 여행] #24 2025.05.07-08 세계적인 호수 마을 할슈타트(Hallstatt)의 인파를 뒤로하고, 안개 자욱한 오스트리아 알프스 골짜기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아마존 락커에서 수령한 라이너에 의지해 추위를 대비하고, 빗속에서 후미등도 없이 좁은 갓길을 달리는 절박한 사투를 기록합니다.
2025.05.07
며칠 전 아마존에서 씨투써밋 리액터를 주문했다. 마치 온 몸을 감싸는 원피스처럼 입고 침낭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제품인데 본인들 말로는 온도를 15°C 늘려준다고 한다. 하지만 실사용자 기준으로는 5°C 정도라고 하는데 이 정도만 되어도 추위는 버틸 수 있다.
아마존은 세계적인 기업이라 주문을 하고 받는 픽업 위치를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아마존 Locker나 우체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 오늘 할슈타트에 있는 우체국으로 가면 그 제품을 수령할 수 있다.



그문덴 마을 바로 아래 위치한 트라운 호
커피와 아침을 간단하게 얻어먹은 후 작별 인사를 나누고 출발을 했다. 출발 당시에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오후부터 비가 내릴 예정이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오스트리아 남서부 지역은 전부 산악지대다. 자전거를 타면 골짜기를 통과하게 되는데 날씨가 우중충하니 산에 구름과 안개가 끼면 분위기가 꽤나 을씨년스럽다. 뉴질랜드도 그랬는데 산이 많은 지역에는 인구밀도가 낮아서 자전거 길을 따로 만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산으로 길을 내는게 어려운지 갓길도 넓지 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 언제까지 우중충할건데
할슈타트는 세계적으로 아름답기로 소문난 호수마을이다. 그래서 사는 인구는 적은대 반해 그 명성 때문에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서 주민들이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굉장히 많이 알려져있다. 그래서 가기 전에 기대를 많이 했다. 장엄한 풍경 속에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은 마을이 정말 아름답겠구나.
할슈타트 옆에 호수가 꽤나 큰데 일부러 그 호수를 빙 돌아갔다. 그리고 그 곳이 정말 마음에 들면 그 마을 안에 있는 비싼 캠핑장에서 하루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조금 실망했다. 분명히 아름답고 예쁜데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그 비슷한 마을을 정말 많이 봤다. 그러니까 그 곳의 아름다움이 100이면 근처에 다른 마을들은 80정도로는 아름답다. 짧게 여행오는 관광객들은 근처 80의 아름다움을 가진 도시라는 비교군이 없으니 그 곳이 매우 특별해 보일 수 있겠지만 내 눈에는 그저 다른 곳과 비슷하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할슈타트 도착 리액터 수령
관광객도 너무 많고(한국인들 엄청나게 많았다.) 시간도 아직 넉넉하게 있어서 아마존에서 주문한 제품만 수령하고 바로 그곳을 떠났다. 기억에 남는 것 하나. 우체국 여직원이 "한국 여권은 정말 아름다워요."라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한국인을 보면 말도 걸고 아는 척을 좀 했을 거 같은데 그러기 귀찮았다. 게다가 내가 말을 걸어 본 한국인들이 대게 그닥 호의적이지 않았고 남한테 관심이 없었다.
가는 길이 녹록치 않다. 비는 계속 내리고 갓길은 좁다. 거기다가 꽤 높은 산도 중간에 버티고 있다. 위험한 곳에서 자전거를 탈 때 사실 조금 아쉬운 건 그 위험성이나 상황의 급박함을 담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핸드폰을 들고 찍으면서 자전거를 탈 순 없는 노릇이라 그런 곳을 지날 때면 그 날 찍은 사진이 항상 별로 없다.



살려줘
베트남에서 유럽으로 넘어올 때 자전거 후미등을 잃어버렸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후미등을 정말이지 거의 쓸 일이 없었다. 거의 맑은 날이었고 나는 항상 해가 떠있을 때만 자전거를 탔다. 그래서 아직까지 후미등을 사지 않았는데 이렇게 비가 오고 흐린날엔 후미등을 키고 달려야 한다.
5시가 넘은 무렵, 가까스로 캠핑장에 도착했건만 주인 아주머니가 캠핑장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는데 오스트리아 알프스 지역은 아직 추워서 절반 정도의 캠핑장이 문을 열지 않았다는 거다. 아무리 부탁해봐도 캠핑장 주인은 너무 단호해서 결국 15km 정도 떨어져있는 다른 캠핑장으로 향했다. 그 캠핑장도 문이 닫혀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 마을 어딘가에서 와일드캠핑을 해야한다.
비가 오고 매우 흐린날, 차량 들이 전부 라이트를 키고 달리는 상황 속에서 라이트 없이 좁은 갓길을 간신히 달려갔다. 평지보다는 확실히 골짜기의 안개가 더 짙고 그에 따라 분위기도 더 살벌해지는 법이다. 한시간 정도를 손에 땀을 쥐고 겨우 달려서 캠핑장에 도착하니 다행히 문이 열려있다. 캠핑장 주인도 매우 친절한 분이라 몸과 마음이 다 녹는 기분이 들었다. 케익 한 조각을 먹으라고 줬다. 버려진 길고양이가 먹이만 주면 좋다고 따라가듯, 힘든 여행자에게 작은 온기의 손길만 내밀어도 의심치 않고 받아들이는 법이다.
켐핑장 주인은 오늘, 내일 비가 온다며 나에게 실내에 있는 한 공간을 내어주었다.


2025.05.08
실내에서 달콤한 휴식.

샴푸로 설거지하면 기름 때가 기가막히게 빠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기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