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의 빗속에서 길을 묻다: 떼제의 평화와 스위스의 설산 사이

[유럽 자전거 여행] #10 2025.04.17 리옹에 도착해서 리옹대성당을 방문하고 루이 14세와 생택쥐페리 동상도 구경한다. 그리고는 웜샤워 호스트의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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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의 빗속에서 길을 묻다: 떼제의 평화와 스위스의 설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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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7

오늘은 프랑스 3대 도시 중 하나인 리옹을 들렀다가 남동쪽으로 20-30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사는 웜샤워 호스트 집으로 간다.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남부로 내려갈 지, 스위스로 가서 독일, 오스트리아를 넘어 동유럽으로 갈 지, 아직 경로를 확정하지 못했다. 두 경로 모두 리옹을 거쳐가도 되었기에 일단은 리옹을 첫 번째 목적지로 삼은 것이다.

내가 주로 웜샤워나 에어비앤비로 묵는 마을은 완전히 현지인들이 사는 곳이라서 아침이 되면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학생들도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오늘 비 올 확률이 그닥 높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또 비가 내렸다. 자전거를 탈 때 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체감 기온이 천지차이다. 거기다 비까지 오면 요며칠새와 같이 낮 기온이 10도 정도가 되면 정말 너무 춥다. 그래서 이런 날씨에는 오히려 내리막보다 오르막이 낫다. 힘들게 페달을 밟으면 그나마 체온이 올라가니까.

오늘 웜샤워 호스트가 오후 6시나 되어야 집에 도착한다고 해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리옹에서 3시간 정도를 때워야했는데 무료로 비를 피할 곳을 마땅히 찾을 수가 없어서 리옹광장 근처 카페로 갔다. 커피 주문 고객은 바깥 테이블에만 앉을 수 있었는데 쫄딱젖은 신발을 신고 밖에 앉아있으니 비와 바람을 맞지 않아도 너무 추웠다. 도대체 여기선 내가 돈을 얼마나 써야지 온기를 느낄 수 있는건가.

한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너무 추워서 근처 유명한 성당으로 향했다. 카페에 들르지 않고 진작 여기에 올 걸 그랬다. 나에게 무료로 실내 공간을 제공하는 곳은 이런 종교건물 뿐일까. 대충 구경을 하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성당에 들어와 있으니 가톨릭 음악을 듣고 싶어 떼제 음악을 검색하려 했다. 공교롭게도 유튜브 뮤직으로 검색한다는 것이 구글지도에다가 떼제를 검색했다가 떼제 공동체가 80km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주가 부활절이고 그 곳으로 가서 부활절을 맞으면 꽤나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선 떼제 공동체에 메일을 보냈다. 만약 그 경로로 가면 스위스를 놓치고 프랑스에서 바로 독일로 들어가게 된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떼제 공동체를 가지 않고 스위스로 갔다.)

떼제 공동체란?

떼제 공동체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작은 마을 떼제에 있는 초교파적 그리스도교 공동체다. 1940년 브라더 로제가 시작했고, 가톨릭·개신교·성공회 등 서로 다른 교회 전통의 형제들이 함께 살며 화해와 일치를 공동체의 핵심 가치로 삼는다. 지금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떼제를 찾아와 짧고 반복적인 성가, 침묵기도, 성경 묵상, 공동노동을 함께한다. 그래서 떼제는 교리를 강하게 내세우는 곳이라기보다, 단순함·기도·환대·그리스도교적 화해를 몸으로 보여주려는 공동체라고 보면 된다.

💡
리옹 대성당, 정확히는 생장 대성당(Cathédrale Saint-Jean-Baptiste) 은 리옹 구시가지인 비외 리옹 한가운데에 있는 중요한 가톨릭 대성당이다. 리옹 대주교좌가 있는 교회라서 단순한 오래된 성당이 아니라, 도시의 종교적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건축은 12세기 후반부터 15세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져서, 로마네스크에서 고딕으로 넘어가는 흔적이 함께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일 날씨를 보고 생각하자고 마음 먹고 웜샤워 호스트 집으로 향했다. 험한 길에 비를 쫄딱 맞고 들어가니 엄마, 아빠, 딸 세 가족이 나를 반겨준다. stepfamily인데 엄마가 자식을 낳고 아빠와 재혼한 모양이다. 프랑스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어서 이런건 아주 흔한 듯하다. 게이 가족이 있어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전거 여행의 꽃: 웜샤워(Warmshower) | 사용법과 경험담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던 날, 그 사이 피레네 산맥 부근에 작은 마을. 텐트를 칠 만한 작은 공터가 보이길래, 마침 집 마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프랑스인 아저씨에게 여기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흔쾌히 된다고 수락하면서 나에게 자전거 여행자냐고 질문했다. 그렇다라고 하니 본인 집에 남는 방이 있다고 거기서 자라고 하셨다. 본인도 과거에

이 가족은 자전거 여행을 정말로 좋아하는 모양이다. 시간 날 때 일주일씩 이주일씩 가족들이 함께 자전거 여행을 예전부터 해왔는데 여행을 하고 나면 꼭 사진첩으로 기록을 남겨둔다. 아빠는 심지어 티벳고원-히말라야 자전거 여행도 간 적이 있다. 나도 돌아가면 여행 포토북을 꼭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음악을 취미로 가진 가족이다. 아빠는 기타와 피아노, 딸은 드럼과 트럼펫, 엄마는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날씬하고 예쁜 엄마인데 살면서 두개의 열정적인 취미가 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아코디언과 등산. 이 아줌마가 스위스 산의 사진을 보여주어서 떼제 공동체로 가지 않고 스위스로 넘어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뉴질랜드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등산을 같이하고 캠핑을 하면서 '이런 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멋지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 재미도 있다'라는 걸 많이 느꼈다면 유럽에서는 유럽 사람들의 실제 삶의 방식에 대해서 그런 감정을 많이 느낀다. 가족끼리 저녁에 식탁에 모여서 같이 요리를 하고 얘기하는 것. 가족이 같은 취미를 공유하면서 그것을 누리며 사는 것. 집에는 꼭 큰 창고가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취미 장비들을 차곡 차곡 보관해 놓는 것 같은거 말이다.

주말이 되면 가족이 함께 강이나 산으로 가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서는 마당이나 테라스에 앉아 느긋하게 저녁을 먹는 모습도 그렇다. 삶이 단지 일하고 쉬는 반복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취미와 공간이 하나의 생활양식으로 묶여 있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우리나라는 물질적 풍요는 여느 선진국 못지 않게 올라왔지만 생활양식의 여유는 아직 부족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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