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골짜기 와일드캠핑: 맥주 한 캔과 스위스 낚시꾼의 자랑 섞인 밤
[유럽 자전거 여행] #11 2025.04.18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첫 관문. 알프스의 시작점 골짜기에서의 와일드캠핑. 거기서 만난 스위스인들
2025.04.18
아침에 5도 이하로 떨어졌다. 내가 유럽에서 갔던 집은 전부 난방을 하지 않았는데 난방비가 상당히 비싸다고 한다. 꽤나 추워서 아침 일찍 깼다. 아 그리고 이때까지 그 어떤 집도 형광등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부분 주황색의 간접등을 사용한다. 이 부분은 참 마음에 든다.

오늘은 ioverlander로 찾은 알프스 산맥 골짜기에 위치한 한 와일드캠핑장으로 향한다. 다행히 생각보다 고도가 낮다. 거기서 자고 내일이면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할 것이다.
어제 갈까 말까 고민했던 떼제 공동체에 가지 않아도 후회가 없겠지? 만약 떼제 공동체로 방향을 정했더라면 스위스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겠지? A선택과 B선택 둘 중 어떤 것을 선택해도 언제나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A선택과 B선택 모두 그만큼 행복하고 가치있는 선택이었다는 뜻이다. 돌아보지 말고 내가 선택한 길을 가자. 그리고 그 선택을 사랑하자. 아모르 파티.
자전거를 타면서 느낀 건데 유럽에는 러너들이 정말 많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달리는 사람이 곳곳에 정말 많은데 왜 그렇게 많은 유럽 사람들이 길이 형편 없는 동남아에서도 러닝을 하는지 알 거 같았다. 그냥 자기들이 살던 방식대로 여행지에가서 똑같이 하는 것 같다.
유럽은 이처럼 생활체육이 잘 발달 되어 있는 나라인 듯 하다. 모두들 각자의 스피드로 각자의 수준에 맞게 운동을 즐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은 날 자전거 도로에서 수많은 바이크패킹족들을 만난다. 다들 자전거에 짐을 그득그득 싣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자전거 길이 잘 발달되어있고 국경을 자유로이 넘을 수 있으니 자전거를 타고 누릴 수 있는게 참 많아보인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바이크패킹이 유행할 날이 올까?



자전거를 오래 타다보면 자전거와 나가 물아일체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페달인지 크랭크인지 어딘가 문제가 생겨서 페달을 세게 밟으면 딱딱 소리가 들리는데 이게 마치 내 손가락 관절을 꺾을 때 나는 소리 같아서 한번씩 그 소리를 들으려고 페달을 세게 밟곤 한다. 하지만 며칠 비를 맞고 나니 갑자기 그 소리가 사라졌다. 자전거는 분명 기계인데 타다보면 문제가 있었던 부분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기도 한다. 마치 우리 몸처럼.
짐이 하나가 빠지면 손가락 하나가 없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손가락 하나가 없는걸 누가 알아차리지 못하겠는가. 페달을 밟는 감각부터 다르다.
자전거는 도구가 아니라 내 몸의 확장이다. 내가 세계를 경험하는 매개이다.
오늘 와일드캠핑 구역으로 가기 전에 쇼핑을 하면서 간만에 맥주를 샀다. 프랑스는 뉴질랜드와 다르게 술을 사기 비교적 쉬웠다. 뉴질랜드는 주류에 관해 상당히 엄격한 반면 프랑스는 좀 더 느슨한 느낌이다. 여러모로 프랑스가 마음에 든다.
와일드캠핑 하는 곳으로 가니 스위스에서 온 내 또래의 낚시꾼들이 그 곳에서 텐트를치고 있다. 간단히 음식을 먹고 난 후 텐트를 치고 안에서 쉬고 있으니 나를 불러낸다. 맥주와 소시지를 건네면서 대화를 좀 했다. 거의 20년 넘게 낚시를 즐겼다는데 이 곳에서 잡은 커다란 물고기 사진을 보여주며 나에게 자랑을 했다. 나도 스위스에 관해 이것 저것 물어보고.


이 친구들도 뉴질랜드에서 3개월 여행하면서 낚시만 했다고 한다. 스위스 1인당 GDP는 우리나라 3배 정도 된다. 태어날 때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90% 이상이 결정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데 여행을 하다보니 참으로 많이 느낀다. 어느 나라에서는 주말 없이 하루에 12시간씩 근무해서 그저 먹고 사는 수준이고 어떤 나라 사람들은 국적 빨로 몇개월 씩 낚시만 하면서 산다.
이런 와일드캠핑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게 단순히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날카로운 무기 하나면 찢어지는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같이 보내야한다. 상대방이 안전한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나라야 워낙 안전한 사회라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지만 유럽은 다르다. 이민자들도 많고 그만큼 이상한 사람도 많다.
어찌됐든 스위스에서도 조심만 한다면 와일드캠핑을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중요한 정보 하나를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