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라이딩: 구동계에 박힌 모래를 물통 하나로 씻어내며
[유럽 자전거 여행] #09 2025.04.16 론강을 따라서 비를 뚫고 리옹으로 가는 길.
2025.04.16
오늘 비가 하루종일 내린다. 비가 내리다가 오후 4시 정도에만 해가 떠도 라이딩 후에 캠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내일까지 비가 계속 예보되어 있다. 내렸다 말다 조금씩 오는 비가 아니라 마치 우리나라 장마처럼 내리는 비. 그래서 오늘도 5만원 정도 하는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아침 일찍 방수자켓, 방수바지를 입고 모든 짐에다 방수 커버를 씌웠다. 내 자전거 가방은 꽤 비싼 독일산 오르트립 제품이라 꽤나 믿을만하다. 독일이 아웃도어에 미친 민족들이라 아웃도어 제품을 상당히 잘 만들어내는데 내가 쓰는 자전거 네비게이션 앱, 타이어, 자전거 가방 전부 독일산인데 단 한번도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다. 놀랍게도 8,000키로 가까이 타는 동안 펑크가 단 한번 밖에 안났다. 라오스w에서 펑크가 나서 수리비용이 1,000원 정도 밖에 안들었기에 아직까지 펑크 수리 경험이 없다.
오히려 한국에서 집근처 라이딩을 했으면 혼자 펑크도 때워보고 자전거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주말에 이리저리 만저보면서 자전거 수리 방법을 좀 익힐 수가 있었을 거 같다. 혼자 만지다가 잘못되면 그냥 근처 수리센터로 끌고가면 되니까. 하지만 만약 여기서 길을 가다가 자전거에 문제가 일어났는데 혼자 고쳐보겠다고 괜히 나섰다 문제가 더 커지면 골치아파진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중에 스스로 자전거를 고칠 기회가 더 적은 것 같다.
아무튼 비가 상당히 왔다. 당장 며칠 전 맑은 날씨까지만 해도 길거리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수두룩했는데 비가 이렇게 오니까 자전거 타는 사람이 확 줄었다. 그래도 나처럼 짐을 싣고 여행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이토록 비가 많이 오는 날에 이 정도로 장거리로 자전거를 탄 건 정말 오랜만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경산에서 포항 호미곶까지 비오는 날 자전거를 타고 1박 2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네비게이션도 없고 친구 한 명의 방향 감각에만 의존해서. 일기 예보도 제대로 확인 못 해서 비를 쫄딱 맞고, 미성년자라서 밤 10시 이후 찜질방도 들어가지 못해 홈플러스에서 노숙을 했었지.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나는 그래도 장비빨을 꽤나 세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가 깨끗해질거라 생각했는데 완전 반대다. 비와 함께 바닥에 있는 흙이 자전거에 튀는데 체인, 구동계, 브레이크에 진흙이 다 들어가서 계속 말썽을 일으킨다. 주기적으로 물통에 있는 물로 자전거를 씻으면서 갈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마지막 몇 km는 발과 자전거 바퀴가 푹푹 빠지는 논길로 갔다. 자전거를 탈 수가 없어서 한참을 끌고.










오늘 에어비앤비 주인 아주머니는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개 3마리와 함께 혼자사는 분인 것 같았는데 말하는 걸 무지 좋아하는 분이셨다. 영어도 못하고 오로지 프랑스어로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신다. 그나마 프랑스어를 조금이나마 할 줄 아는게 다행이었다.
내가 예전에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 느낀 점은, 프랑스어와 영어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거였다. 단어도 비슷한게 많고 상당히 많고 대개 문장 구조가 1:1 대응이 된다. 영어와 프랑스어의 거리가 계단 한 칸 정도 차이면 영어와 한국어의 거리는 계단 10칸 차이 처럼 느껴졌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 하나를 유창하게 하는 건 유럽 사람이 근처 나라 언어 세 개 정도를 더 배우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인데도 영어를 전혀 못하는 유럽인들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과의 교육격차가 실감이 난다.(우리나라가 교육 수준이 압도적으로 높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에 쏟아 붇는 시간과 비용을, 상대적으로 언어적 거리가 가까운 일본어에 쏟아 붇는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부분의 한국인이 일본어를 거의 원어민 수준 바로 아래 정도로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심지어 유럽어들끼리 언어적 거리는 한국어와 일본어보다도 가깝다.)
주인 아주머니는 마음씨 좋은 분이라 본인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많이 내어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