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츠후트(Landshut)의 옥토버페스트: 1L 맥주잔 뒤에 숨겨진 여행자의 피로
[유럽 자전거 여행] #20 2025.04.30 독일 란츠후트(Landshut)에서 맞이한 노동절 전야. 바이에른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녀들과 옥토버페스트 체험. 1L의 거대한 맥주잔을 비우는 밤.
2025.04.30
아침에 일어나서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침낭도 문제였구나. 오늘 온도는 많이 낮지 않았다. 내 침낭은 국산 침낭인데 무게에 비해 가볍고 성능이 좋기로 유명한 제품이었다.(꼴로르 에어라이트 400) 그래서 재고가 들어올 때마다 재빨리 품절되는 제품이다. 처음 사서 뉴질랜드에서 썼을 땐 이 온도에서도 충분히 따뜻했는데 여행을 하면서 많이 압축해다녀서 그런지, 털이 빠져서 그런지 성능이 예전만 못하다.
이 놈은 컴포트 온도 -2도라는데 거짓말이다. 캠핑용품 같이 생존과 직결된 물건은 믿을만한 세계적인 기업에서 사는게 제일이다. 어쩔 수 없이 가격때문에 타협하더라도 국산 기업보다는 해외 기업이 낫다고 생각한다.
동일 온도 스펙의 다른 유명 해외기업 제품과 비교했을 때, 이 제품은 유독 가격이 싸고 무게가 가벼웠다. 이 점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공식 홈페이지에 가봐도 유명 제품판매글에 당연히 존재하는 시험성적 같은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체 테스트를 한 거 같고 당연히 온도 성능을 공격적으로 과장해서 적어놨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쁜 놈들. 악질들. 이 침낭은 감성 장비지 필드 장비가 아니다. 그저 브랜딩 잘하고 광고 잘 돌린 예쁜 국산 백패킹 침낭일 뿐이다.

어제 Globetrotter에 갔을 때 그들의 자체 브랜드 에어매트를 소개해 줬었다. 저가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백패커들과 캠퍼들을 섭외해서 직접 현장에서 사용하면서 그 목소리를 반영해서 제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아웃도어 활동이 유럽에 비해 약하다보니 제품의 퀄리티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드코어하게 여행하면 가장 먼저 탈나는 것들이 우리나라 제품이다.(헬리녹스 제외. 이건 최고다.)
아무튼 잘 때 바닥 냉기때문에 다리가 아픈건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새벽에 따뜻하다는 느낌보다는 온 몸에 냉기가 감돈다.








오늘 목적지는 도나우강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루트에 있는 마을인 Landshut에 사는 웜샤워 호스트의 집. 완연한 시골마을을 달렸다. 숲, 밭, 목초지를 가로지르면서. 해가 상당히 쨍쨍했다.
인간의 후각과 근육은 긴밀하게 연동되고 있다. 자전거를 타다가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라일락이나 자스민의 향기를 맡으면 지친 몸이 확 살아난다. 냄새 한번 맡았다고 몇 키로를 더 기분좋게 달릴 수 있다. 뉴질랜드 북섬에서 느낀 그 감각을 오늘 또 한번 느꼈다.
오늘은 Landshut의 Oktoberfest가 있는 날이랬다. Oktoberfest는 뮌헨에서 매우 유명한, 이름에서 보이는 것처럼 10월달에 있는 매우 큰 축제이다. 10월이 아닌데도 비슷한 느낌이 나는 축제라 그냥 형식적으로 이름을 이렇게 부르는 듯 하다.
호스트 부부는 조금 무뚝뚝한 인상의 전형적인 독일인의 느낌이었다. 오늘 축제기간에다 내일은 노동절 휴일이라 근처 도시에서 의대를 다니는 딸이 친구 두명과 같이 내려왔다. 한명은 미국인, 한명은 오스트리아인이다. 축제에 간다고 3명의 친구들이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 옷도 다 갖춰입었다. 셋다 여자 애들인데 잔뜩 들떴다.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 나오는 소녀들 같았다.(신발은 너무 현대적이서 이질감이 있었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느낀 건, 새로운 사람을 받아드리는게 점점 힘이 든다는 것이다. 여행 초반에는 나도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움에 대한 자극도 조금씩 줄어들고 활짝 열려 있던 마음도 조금씩 닫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축제에 갈거냐, 집에서 쉴거냐 묻길래 맥주마시면서 뭔가를 구경하는 형태의 축제라 생각하고 당연히 간다고 했다. 축제장에 도착하니 우리나라 놀이공원 같은 느낌이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한 쪽에서 비어가든에서 단체로 맥주를 마시고 있고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으며 왁자지껄한 분위기. 원체 이런 분위기를 선호하지 않는데, 오늘 처음만난 사람과, 그것도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딱딱해보이는 사람들과 같이 있으니 좀 힘들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실수로 축제에 갈 때 지갑을 들고 가지 않았는데 마치 내가 일부러 지갑을 들고오지 않고 얻어먹으려는 심보의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아 수치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난생처음 1L 글라스에 맥주도 마셔보고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이상한 사실을 하나 알았다. 여기서 수천명의 독일인들을 스치듯이 봤는데 외모가 멋지고 예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