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은 파란색이 아니다: 크로아티아의 공기가 빚어낸 생경한 빛

[유럽 자전거 여행] #37 2025.05.25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를 향해 해안경로를 따라서 남하합니다. 길에서 본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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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은 파란색이 아니다: 크로아티아의 공기가 빚어낸 생경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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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5

자전거를 타면서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 지형에 대해 설명해주는 유튜브를 많이 듣는다. 전혀 관심없었던 나라도 막상 그 나라에 있으면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고 생경한 풍경을 보면 호기심이 인다. 발칸반도에 관한 영상은 많이 없는 편인데 그래도 크로아티아의 관광에 관련된 영상은 꽤 있다. 여기서 180km 정도 떨어진 곳에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진 두브로브니크라는 곳이 있는데 각종 매체에 소개가 많이 되어서 관광지로 유명하다.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못 정한 터라 일단은 그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이 곳 크로아티아에서 본 파란색은 내가 알던 파란색이 아니고 초록색도 내가 알던 초록색이 아니다. 빛의 질과 공기의 밀도, 배경이 되는 바위가 달라서 그런걸까?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실제로 색이 다르게 보인다. 나 같은 범인이야 이런 걸 어렴풋하게 느낄 뿐이지만 천재들은 이 아름다움을 정확한 색과 문장으로 포착해낼 수 있다. 늘 그렇듯 그 천재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렘브란트 없이 인류가 내면을 비추는 그 금빛 빛의 아름다움을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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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예술에 의해서만 우리는 우리가 속한 세계를 벗어나고, 같은 세계인데도 이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어떻게 다른 세계가 될 수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Menci Clement Crnčić, Zrnovnica II, Wikimedia Commons
Menci Clement Crnčić, Coastal Landscape in Croatia, Wikimedia Commons

일단 오늘 바닷가 근처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구역에 무료로 캠핑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여 그 곳으로 향했다. 크로아티아 물가가 이탈리아보다 저렴하다고는 하는데 해변과 가까운 곳은 전부 관광지라 물가가 다 비싸다. 어제 캠핑장도 20유로나 줬다. 긴 내리막을 따라 내라가서 플로체라는 바닷가 마을로 진입했다. 근데 오늘 일요일이라 슈퍼마켓과 식당 전부 문을 닫았다. 2023년부터 일요일 영업규제 정책이 생겼다고 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러한 정책에 대해선 나는 매우 찬성하는 편이다. 하지만 여행자 입장에서는 슬픈 일이다.

영업규제 때문에 물도 못 사고 가진 음식도 라면과 과자 조금 뿐인데 어쨌든 캠핑 할 곳에 도착했다. 오후 두시 반에 도착해버려서 조금 더 가볼까하여 이리 저리 돌아봤는데 휴양지 해변 근처는 와일드캠핑할 장소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 바로 옆에 있는 캠핑장 후기를 보니 40유로나 하는데다 시설이 형편없다고 한다.

가진 물도 없어서 근처 카페에 가서 하나에 2.5유로나 하는 500ml 물을 두 통이나 샀다. 그러고는 해가 지기 까지 기다렸다. 오후 두시 반에 도착했으니 해지기 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기다렸겠는가.

이 곳의 지도를 보면 해안가 쪽으로 가늘고 길게 튀어나와있다. 지리학적으로 이런 지형을 사주(砂嘴)라고 하는데 고등학생 시절 한국지리 시간에 이론으로나 배웠지 실제로 이런 곳에 오는 곳은 처음인 거 같다. 지리를 공부하는 사람은 자전거 여행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바람을 직접 맞고 강과 산을 느끼며 기후에 따른 사람들의 생김새와 성향의 차이를 몸으로 느껴야한다. 평야가 끝나고 산지가 시작되는 지점, 강을 따라 형성된 도시의 생김새, 바다를 끼고 달릴 때와 내륙 산맥으로 들어설 때 공기의 밀도와 습도가 달라지는 순간을 몸으로 통과해야 한다. 지도 위에서는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있는 길도 실제로 가보면 바람의 방향이 다르고, 햇빛의 각도가 다르고, 물과 흙의 냄새가 다르다.

책으로만 배우는 것과 배움의 깊이가 차원이 다르다.

오후 5시 무렵부터 바람이 상당히 강하게 분다. 바닷가 앞 지역, 특히 이런 사주(砂嘴)는 바닷물과 땅의 비열차이로 인한 온도 차이 때문에 해가 지기 직전 두 세시간 전부터 해풍이 강하게 분다. 그러고 해가 질 시간이 되면 계속 바람이 잠잠하다.

발칸지역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인터넷 이심카드를 네이버로 구매했었는데 인터넷 속도가 거의 3g 속도밖에 안된다. 간단한 메세지를 보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인터넷을 사실상 못쓴다. 시간을 때울겸 다운받아놓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봤다.

해가 질 때 쯤 되니 귀신같이 바람이 잠잠해진다. 일몰 후에 황혼의 시간이 찾아오는데 그 때가 텐트를 칠 적기이다. 일몰 직후 한 시간 정도는 캄캄하지 않은데 또 너무 환하지도 않아서 적당하다. 나는 이마에 쓰는 캠핑용 라이트가 굳이 필요하지 않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캄캄해지면 텐트를 치기 좀 힘들다. 황혼의 시간이 내가 텐트를 칠 시간이다. 왜냐하면 여기는 공식적으로 캠핑 금지 지역이기 때문이다.

자기 전에는 항상 오늘의 이슬점 온도를 확인한다. 만약 이슬점이 8-13’C라면 오늘 밤 최저기온이 만약 10도 정도 된다면 텐트가 젖는다. 만약 최저기온이 14도라면 텐트도 젖지 않고 빨래도 텐트 밖에 널어놓아도 된다. 정말 평생 알 일 없었을 지식을 강제로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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