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스트의 날카로운 바위: 발칸의 산맥 앞에서 마주한 원시적 두려움

[유럽 자전거 여행] #36 2025.05.24 크로아티아 스플리트를 떠나 비오보코 산맥의 내륙 도로로 진입합니다. 날카로운 카르스트 지형이 선사하는 압도적인 스케일 앞에서 죽음과 맞닿은 원시적 두려움을 느끼지만, '당장 오늘 하루'에 집중하며 불안을 다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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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스트의 날카로운 바위: 발칸의 산맥 앞에서 마주한 원시적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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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4

스페인부터 이어지는 해안길 도로인 유로벨로 8번 루트를 따라가면 그리스 아테네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해안가의 도로는 대체로 교통량이 많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스트레스를 꽤나 받을 수 있다. 이틀 전 배를 탔을 때 만났던 독일 여행자가 자신은 해안가 루트 말고 내륙으로 들어갈거라며 자신의 경로를 내게 대충 설명해 주었었다. 이 쪽의 지형과 환경을 익힐 겸 나도 오늘 그 경로를 따라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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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시 스플리트 바로 아래 쪽에 비오보코 산맥이라는 해안을 따라 있는 길쭉한 산이 하나 있는데 그 밑으로는 해안선도로가 있고 그 위로도 도로가 있다. 위쪽 도로가 차량 통행량이 훨씬 적다고 한다. 발칸반도의 산들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모양이 뾰족하고 날카롭다. 곳곳이 절벽이다. 우리나라의 부드럽고 둥글 둥글한 산과는 상당한 대비를 보인다. 척박하고 웅장해보이는데 이런 이질감이 내 속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자아낸다.

산을 보며 느끼는 두려움은 아주 원시적인 감정일 것이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주 낯선 형태의 산을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그 압도적인 스케일에 무력감을 느낀다. 이 느낌은 아주 깊어서 죽음이라는 감각에까지 뿌리가 닿는다. 정말이다.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보다 내가 훨씬 겁이 많은 것 같다.

낭떠러지 앞에 서있는 감각을 살면서 받을 때가 좀 있다. 실제로 낭떠러지 앞에 섰을 때, 큰 돈을 한번에 썼을 때, 너무 이질적인 환경에 던져졌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아찔한 감각이 올라온다. 오늘이 그랬다.

​발칸반도에는 개도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 정도까지는 안전한 편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밑에 알바니아로 가면 개가 많이 사납다고 한다. 양을 지키는 양치기 개들이 특히 크고 공격적이라고 한다.

두려울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며칠 뒤의 일정까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당장 오늘 하루하루의 계획만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만 보고 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이만큼 지나왔구나를 깨닫는다.

서유럽 사람들은 인적이 드문 길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미소를 지으면서 말로만 ‘Hello’라고 했는데 여기서 가끔씩 마주치는 크로아티아인들은 손을 높이 들고 헬로하고 기분 좋게인사한다. 상대방이 이렇게 인사해주면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오늘 도착한 캠핑장에서 며칠 전 같은 배를 타고 온 독일인 자전거 여행자와 우연히 다시 만났다. 여행을 막 시작한 사람과 여행이 오래된 사람은 확연히 다른 바이브를 가지고 있다. 이 사람은 긴 휴가를 받아서 이제 막 발칸반도로 넘어온 신규 여행자 특유의 활달함을 가지고 있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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