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펠리에의 햇살을 지나, 아비뇽의 성벽 안으로
[유럽 자전거 여행] #06 2025.04.10 - 11 몽펠리에와 님을 지나 아비뇽 교황청으로. 아비뇽에서 만난 이란에서 온 웜샤워 호스트.
2025.04.10
와일드 캠핑을 할 때는 반드시 물을 많이 챙겨야한다. 1.5L 페트병을 몇 개 챙겨다니면서 식당에서 물 구걸을 해도 되긴한데, 큰 마트에 물이 생각보다 많이 싸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500ml 짜리 물이 거의 5천원 정도 했었는데 마트에서 1.5L 짜리 물은 거의 300원 정도 주면 살 수 있다. 그래서 굳이 구걸하지 않고 두통 정도를 사가는게 속이 편하다.
2L의 물만 있으면 머리 감고 세수하고 샤워하고 이까지 닦을 수 있다. 팬티만 입고 머리에 물을 묻힌 다음 샴푸로 머리를 감고 비누로 얼굴을 씻으면서 흘러내리는 물로 몸을 씻으면 된다. 어차피 사람이 없는 터라 좀 추운것만 빼면 괜찮다.


오늘은 몽펠리에를 지난다. 될 수만 있으면 대도시는 피해서 가는게 좋긴한데 나는 유럽 여행이 처음인지라 유명한 장소는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몽펠리에 성당만 구경하고 바깥으로 빠져나오기로 마음먹었다.
가는 길에 지나는 해안가 마을들이 정말 예쁘다. 햇살이 좋고 온도가 적당하니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였다. 몽펠리에 성당에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사진을 좀 찍고 나왔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동남아에서 불교 건축물만 보다가 갑자기 모든 역사 건축물들이 기독교 건축물이 되니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들긴한다.








오늘도 완벽한 와일드캠핑 장소를 찾았다. 캠퍼밴이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분리가 되어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에는 돌로 된 테이블과 의자까지 있다. 다만 텐트를 치는 사람이 많이 없었는지 풀이 좀 무성하게 자라있다.
와일드 캠핑을 할 때 가장 무서운건 숲에 사는 동물도, 누군가 찾아올까 하는 두려움도 아니다. 다낭에 있을 때 만났던 자전거 여행 고수 한국인 아저씨가 말하길, 만약 어떤 시골 동네에 텐트를 친다면 무서워해야할 사람은 나일까 동네 주민들일까?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와일드 캠핑에서 가장 두려운 점은 다름아닌 차에 치일까 하는 걱정이다.
iOverlander에 나와있는 와일드캠핑 장소는 캠퍼벤과 텐트를 칠 수 있는 장소를 동시에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자전거 전용도로 근처나 숲 깊숙한 곳이 아닌 이상 내가 텐트를 칠만한 장소에는 보통 차 또한 들어올 수 있다. 내 텐트는 와일드캠핑을 하기 알맞은 짙은 녹색이라서 밤이 되면 깜깜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차가 들어올만한 곳에 텐트를 칠 때는 나는 항상 내 자전거를 텐트 앞에 눕혀놓아 행여라도 자동차가 들이닥친다면 내 자전거를 먼저 밟고 내 텐트를 덮치게끔 위치를 설정한다.
차를 몰아본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이렇게 가로등도 없고 어두컴컴한 곳에 해가 지고 웬만해선 갈 일이 없고 혹시나 가더라도 조심조심 움직이면서 다닐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이 가슴 한켠에 남아있다.
아무튼 오늘은 그럴 걱정 없는 장소다.

2025.04.11
오늘 목적지는 세계사 시간에 배운 ‘아비뇽 유수’ 사건에 등장하는 바로 그 아비뇽이다. 교황이 수십년 살았던 곳이라 아비뇽 교황청이 거기에 있다고 한다. 어젯밤에 근처에 있는 웜샤워 호스트들 몇명에게 메세지를 보내놨는데 그 중 한명에게 답변이 왔다.
여기는 론강 하류지대라 그런지 대체로 평원이다. 아비뇽에서 리옹까지 론강을 따라 올라갈 예정인데 그 때까지는 평지가 지속된다. 태국도 방콕에서 치앙마이 전까지 계속 평지였다. 하지만 라이딩하는 재미가 다르다. 태국에서는 대체로 차가 다니는 메인 도로를 달렸는데 하루종일 직진만 해야할 때도 많았고 무엇보다 공기가 탁해서 제대로 된 풍경을 감상할 일이 없었다. 태국에서 자전거 타는 낙이라하면 달리다가 세븐일레븐에서 간식 사먹고, 중간에 스무디 먹고, 밥 먹는 재미다. 그러다가 호기심이 생겨서 메인도로에서 벗어나서 시골길로 들어갔다가 개 떼들에게 호되게 한번 당하고 나면 또 며칠간은 시골길로 가지 않게된다.

론강을 따라가는 자전거길 Via Rhona



동남아 국가들은 대체로 메인 도로가 잘 닦여있다. 차, 오토바이, 잡상인, 트럭 등 오만 교통수단들이 모두 그것을 이용하기에 보통 갓길도 넓은 편이다.(라오스 제외). 골목 골목 구석 구석까지 길이 잘 닦여 있는 곳은 태국인데 개 때문에 못 들어간다고 보면된다. 그래서 나같이 겁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은 메인 도로만을 이용해서 달리기 때문에 속도는 날지 몰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좀 떨어진다.
반면 유럽은 차가 다니는 길과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 대체로 나뉘어져 있는 편이라 찻길에 갓길이 동남아보다 좁다. 그래서 마음 놓고 찻길에서 쌩쌩 달리지 못하겠다. 물론 선진국 답게 차들이 자전거를 잘 배려해준다. 베트남의 운전 철칙은 ‘할 수 있으면 한다.’이다. 절대 배려해주지 않고 틈만나면 비집고 들어가고 운전자들은 자전거 운전자를 죽이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운전한다. 심지어 하노이에서 자전거를 탈 때는 자기가 뒤에서 오토바이를 치고선, 오토바이 운전자가 화내니까 심드렁한 표정으로 계속 딴청을 피우면서 자기 갈 길을 가는 미친 차 운전자도 있었다. 옆에서 직관하면서 어이가 없어 말도 안나왔다.
하지만 여기에선 내가 도로를 건너려고 하면, 내 생각엔 당연히 나를 무시하고 지나가겠지 싶은 차도 무조건 브레이크를 잡아서 멈추고선 나를 보낸다. 나는 나름 한국에서 안전운전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배려심을 갖추진 못했다.
동남아에서는 돈이 많아질 수록 자전거에서 오토바이, 오토바이에서 차로 단계적으로 업그레이드한다.(캄보디아에서는 죄다 자전거를 타고 있다.) 거기에 자본주의의 오만함까지 합세해서 윗 단계 운전자는 아랫단계 운전자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무의식 중에라도 있을 것이다.(뇌피셜이다.) 하지만 선진국이 되면 자전거, 오토바이가 심지어 차까지도 취미의 단계로 격상하면서 이러한 동남아에서의 부에 따른 단계적 운송수단의 변화 시스템은 무너지게 된다. 그리하여 자전거는 더 이상 무시받지 않는 교통수단이 되어 이 곳에선 존중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차 운전자들의 자전거 혐오도 아마 아주 조금은 이러한 연유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아비뇽에 도착해서 교황청과 성당을 구경했다. 교황청 안에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해서 밖에서만 구경했다. 놀라운건 웜샤워 호스트의 집이 교황청 성곽 안에 있다는 점이다. 집 안에서 성당 꼭대기가 보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복층 오피스텔 같은 구조의 집에 사는 호스트. 이란 사람이고 핵 엔지니어로 전세계를 다니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아내는 슬로베니아 사람에 아이가 두명있다. 첫 인상은 무뚝뚝하고 잘 웃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는 엄청 호의적이고 잘 대접해주는 사람이었다. 저녁도 푸짐하게 대접해주었고 둘이서 같이 와인 한병을 비웠다.




웜샤워 호스트와 얘기하면 이 사람들의 여행 스타일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 이 사람의 최장거리 여행은 러시아에서 베이징까지 였고 유럽은 10일 정도씩 자주 여행을 했다고 한다. 거의 100% 와일드캠핑을 하고 본인은 웜샤워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씻고 빨래를 하냐고 물어보니 10일 정도는 안 씻어도 상관없단다. 사실 이게 가장 놀라운 점이다. 캠핑과 하이킹 같은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사람 중에는 오래 안씻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유럽인들이 많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