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의 환대를 뒤로하고: 론강 자전거길 위에서 마주한 5일간의 비예보

[유럽 자전거 여행] #07 2025.04.12 - 13 아비뇽을 떠나서 발랑스(Valance)로 가는 중에 와일드캠핑. 5일간의 비예보로 인해서 발랑스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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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의 환대를 뒤로하고: 론강 자전거길 위에서 마주한 5일간의 비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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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2

오늘도 목적지는 와일드캠핑 장소이다. 호스트가 아침으로 우유와 오트밀, 그리고 점심으로 먹으라고 빵과 쿠키를 내주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론강을 따라 리옹까지 올라가는 Via Rhona 루트의 자전거 길이 시작된다. 자전거 도로의 유일한 단점은 중간 중간에 포장되지 않은 도로가 나오는데 가끔씩 길이 많이 좋지 않은 곳이 나온다. 내 바퀴 굵기가 좀 더 굵었다면 이런 코스를 편하게 갈 수 있었을텐데 여행 준비 단계에서 실수로 얇은 타이어를 끼워버렸다. 덕분에 가볍고 포장도로에서는 좀 더 빠르긴 하다.

ViaRhôna: the cycling route from Lake Geneva to the Mediterranean Sea
Discover ViaRhôna, a cycling itinerary along the Rhône river inviting you from Lake Geneva to the Mediterranean Sea through vineyards, towns, villages and numerous landscapes for more than 800 km!

정말 예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모든 곳이 아름답다. 봄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를 타도 좋은데 유럽 중에서도 경치가 좋은 자전거길을 따라가고 있으니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다. 곳곳에서 멈추고 수도 없이 사진을 찍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여행을 하면 더 싼 가격에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는 이렇게 고생하는 여행이 쉽지는 않으니 지금 많이 누리자. 독하게 마음먹고 돈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유럽에서 상상도 못할 가격으로 여행할 수 있다. 유로 숙소를 가지 않고 와일드캠핑 3일, 웜샤워 1일 이런 식으로 여행하면 숙소비를 0원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좀 번거롭긴 하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공공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 여행을 할 때도 편하다.

기타와 직접만든 트레일러를 달고 여행하는 자전거 여행자. 매일 기타치고 노래부르고 잔다고 한다.

목적지 도착전의 나만의 루틴이 있다. 근처 마트에 들러서 당일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먹을 음식, 그리고 충분한 물을 산다. 씻고(2L), 요리하려면 물이 꽤 많이 필요하다. 마트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싼 경우도 많다. 프랑스에서 첫날 필립 아저씨에게서 lidl이라는 마트가 저렴하다고 배웠고 어제 웜샤워 호스트에게서 intermarche에 다양한 물품들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뉴질랜드에도 우리나라 이마트, 홈플러스처럼 다양한 형태의 대형 마트가 존재하긴 했고, 배낭여행자들이 자주 가는 저렴한 마트가 존재하기도 했는데 나 같은 자전거 여행자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었다. 마을과 마을이 수십키로미터가 떨어져있는데 마트는 오죽하겠는가. 보이는데에 들렀어야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마을과 마을 사이가 가까워서 뉴질랜드보다 여행 난이도가 낮다. 마을 → 논밭 → 숲 → 마을 이런 루트가 하루에 몇 번이나 반복되는데 마을 건물들이 하도 비슷하게 생겨서 마치 한 자리를 뱅뱅 도는 느낌도 받곤한다.

1.5L물이 0.18유로다. 300원이 안된다.

뉴질랜드나 동남아에서는 자전거 여행자들을 마주치기가 힘들다. 그래서 가끔씩 만나면 너무 반가워서 한참을 얘기를 주고받고는 헤어지곤 하는데 여기서는 하루에 수십 수백명씩 만난다. 1박 2일씩 여행하는 사람들도 자전거에 짐을 비슷하게 패킹해서 다니기에 장거리 여행자인지 단거리 여행자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태극기를 꽂고 다니자니 오히려 인종차별의 표적이 될 거 같아서 여기선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서로 무관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씩은 환하게 웃으면서 얘기를 건네주는 사람도 있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텐트보다는 차박에 유리한 캠핑 장소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근처에 마땅한 곳도 없어서 텐트를 치고 밥을 먹었다. 텐트 안에 들어가있다가 왠지 불안해서 밖에 나와 텐트 근처에 방어 장벽을 쳤다. 바로 밑 강에서 큰 나무 줄기 두개를 들고와서 텐트 주변에 다가 바리게이트처럼 눕혀놓았다. 차가 무심결에 오더라도 큰 나무를 밟고는 멈춰설게다.


2025.04.13

앞으로의 일기예보를 보니 5일간 비가 온다고 되어있다. 이토록 길게 자전거 여행하면서 나만큼이나 비에 대한 대비가 안되어있는 여행자는 드물거다. 뉴질랜드에서는 비가 연속으로 와봤자 이틀 정도. 그 때마다 웜샤워 호스트 집, 캠핑장에 머물렀다. 비를 반나절 맞고 달린 적이 뉴질랜드에서 딱 한번 있고, 베트남에서는 비를 두시간 정도 맞고 달린 적이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비오는 날의 온도가 18도 정도 되었고 베트남은 25도 정도가 되었던 거 같다. 그러니까 그렇게 춥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상황이 완전 달라졌다. 캠핑장이 뉴질랜드처럼 싸지 않아서 마냥 캠핑장에 지내기가 망설여진다. 거기에 유럽에서 내가 갔던 두 캠핑장 모두 주방이 없어 테이블에 편하게 앉아서 블로그를 쓸 수가 없다. 다시말해 텐트 안에 하루종일 갇혀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만약 타프를 가지고 있었다면 텐트 위에 타프를 치고 편하게 있을 수 있었을텐데 그것도 없다. 온도는 또 어떤가. 비가 오면 12도 정도로 떨어지고 알프스를 넘는 날에는 8도 밑으로 떨어진다. 최저기온은 말할 것도 없이 더 낮다. 이 온도에서는 내가 가진 라이딩용 옷을 전부 껴입어도 추웠다.(햇빛이 없으면 체감온도가 훨씬 낮다.)

​고민을 하다가 3박 4일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하루에 53,000원 정도되는 돈인데 이 기간 동안 여기 머물면서 재정비를 할 생각이다. 여기에 가는 도중에도 너무 추워서 잘 때 입는 경량 패딩까지 입고 자전거를 탔다. 침낭이 뽀송뽀송하게 말라있을 때 뽀송한 잠옷을 입고 침낭에서 내가 편히 잘 수 있는 최저온도는 경험상 6도 정도 된다. 침낭이 조금이라도 젖으면 13도가 되도 추워진다.

8개월 자전거 세계여행 준비물 및 사용후기
총 232일 주행거리: 11,837km

자전거 여행 가방을 살 때 나는 내가 산 가방이 유일한 가방인 줄 알고 샀었다. 하지만 내가 산 가방은 기본 중의 기본, 최고 작은 가방이었다. 수납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침낭과 반합을 가방에 넣지 않고 외부로 노출시켜 자전거를 패킹한다. 맑은 날엔 상관없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외부로 노출한 물건들을 가방 안으로 넣어야하는데 이렇게 되면 음식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지게 된다.

나에겐 아주 얇은 방수 바람막이(좋다), 베트남에서 산 방수자켓이 있다. 평소에 두개를 같이 껴입고 타는데 문제는 베트남에서 산 자켓이 하나도 따뜻하지 않고 심지어 방수가 하나도 안된다. 그러니까 비가 오면 나는 추위 + 젖음 + 물품 공간부족 문제 세가지 상황에 맞딱뜨릴 수 밖에 없다.

내일 이 도시에 있는 데카트론에 들러서 물품을 새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에어비앤비 숙소에 12시 쯤 도착했다. 체크인 시간이 6시라고 나와있었는데 주인분이 들어가도 괜찮다고 하셔서 다행히 일찍 들어올 수 있었다. 이 곳 숙소는 오리지널 에어비앤비다. 집 주인이 진짜 자기집에 있는 빈 방에 나를 초대하는 구조. 내 방이 있고 다른 생활공간은 주인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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