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의 빗줄기를 뚫고 만난 부활절의 온기: 라면과 귤, 그리고 크레페
[유럽 자전거 여행] #13 2025.04.20 제네바 성피에르 성당에 방문하고, 제네바 한인교회도 갔다. 레만호 아래 쪽 프랑스에 사는 웜샤워 호스트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2025.04.20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텐트를 재빨리 철수했다. 오늘 내가 잔 곳은 제네바 근교인데 부활절을 맞아 제네바 성피에르 성당에 가려고 한다. 성피에르 성당은 12-13세기 때 지어진 건물인데 칼뱅이 종교개혁때 설교를 하면서 개신교 교회가 되었다. 역사적 건물에서의 웅장한 예배를 한번 느끼고 싶었다.


제법 스위스 느낌이 나기 시작한다.
특히 장 칼뱅이 이곳에서 설교한 것으로 유명해서, 제네바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자주 언급된다. 외관은 비교적 절제되어 있지만, 도시를 내려다보는 위치와 오래된 지하 유적, 탑에서 보는 전망 때문에 관광지로도 인기가 많다.




10시에 예배 시작인데 8시 쯤 도착했다. 비가 오고 추운데 비를 피할 곳이 없어 한참 비를 맞으며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렸다. 9시가 좀 넘으니 교회 문을 열어주어서 재빨리 들어갔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고 사람도 많이 없었다. 유럽 교회들이 사람이 텅텅 비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로 역사적인 교회에, 부활절날 이 정도 밖에 안된다는 점이 조금 놀랍긴 했다.


프랑스어 예배를 이해할 수 없는 와중에 성만찬인지 뭔지를 하는 시간에 밖으로 나와서 근처에 있는 한인교회로 갔다. 오늘은 11시 반에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보조배터리 충전을 좀 부탁하니 기꺼이 콘센트를 내어주셨다.(이 때문에 아쉽게도 같이 사진을 못 찍었다.) 춥고 비오는 날, 노숙자 마냥 떠돌아 다니다 따뜻한 교회에 들어가니 앉아만 있어도 큰 위로가 되었다. 겨울의 추위와 봄의 온기는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추위와 온기를 아무런 방벽없이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온도계의 눈금은 생명 에너지와 같다. 내려가면 죽고 올라가면 산다. 온기가 간절한 사람을 무시하지 말아라. 추운날 이방인으로서 외국에서 떠돈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왜 그토록 수많은 종교에서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말이 있는지 피부로 절절히 체감하는 요즘이다. 나그네는 그 때 받은 온기를 온 몸으로 기억한다.
이 교회는 점심을 하지 않는다. 대신 간단한 간식을 함께 먹는다. 감자, 귤, 계란. 아저씨들이 유독 많은 관심을 주셨다. 얼마나 여행했냐, 어디서 왔냐 같은 질문을 하시며 먹을 것을 잔뜩 주셨다. 어떤 아저씨는 지하에서 몰래 라면을 가져와서 몇 개 나눠주시고는 음식들을 잔뜩 비닐봉지에 싸주셨다. 자전거를 엄청 좋아하시는 아저씨가 한 분 계셨는데 최근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과 함께 42km 자전거를 탔다고 한다.(내 자전거 브랜드 캐논데일도 알고있었다.) 그 딸은 그 사실에 굉장히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내가 8,000km를 탔다니까 무척이나 놀랬다. 아빠 뒤에 숨어서 자꾸 이것 저것 나에게 물어보았다.


한국 라면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유럽이다. 신라면은 진수성찬이나 다름없다.
잠깐이지만 온기를 느끼곤 밖으러 나왔다. 오늘의 목적지는 이곳에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웜샤워 호스트 집이다. 스위스에는 제네바에서 시작되는 아주 큰 호수가 하나 있는데(레만호) 그 호수의 위쪽 절반은 스위스고 아래쪽 절반은 프랑스이다. 나는 아래쪽이 프랑스인줄도 모르고 호수를 구경하며 아래쪽에 있는 웜샤워 호스트 집으로 향했다. 그 집 안에 들어가서 콘센트가 스위스 콘센트가 아닌걸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상함을 직감하고 거기가 프랑스임을 깨달았다. 그만큼 유럽은 국경간에 아무런 경계가 없다.




호스트 집은 삼층 집이고 엄마, 아빠, 아들(15세), 딸(17세) 네명이 함께 산다. 엄마는 화가이고 아빠는 사진사. 예술가 집안이다. 프랑스 학교는 부활절 방학이 2주인데, 방학을 맞아 아빠랑 아들이 같이 나무위 트리하우스와 2층 사이에 나무로 된 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아마 우리나라 아버지였다면 그 시간에 일을 더 해서 그 사이를 이을 수 있는 다리를 돈을 주고 샀을 것이다. 시간은 조금 더 아낄 수 있겠지만 아들과의 정서적인 교감과 경험은 그 만큼 잃어버릴테다.
서구권 국가에 집에 방문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요리를 항상 엄마와 남편이 번갈아가면서 한다. 꼭 반반으로 정해놓은건 아닌거 같은데 그냥 시간 되는 사람이 하는거 같았다. 누가 요리하든지 실력의 차이는 없었다. 조금 더 놀라웠던 건 자식도 같이 요리를 한다. 오늘 저녁은 크레페를 먹었는데 처음엔 아빠가 다음엔 엄마가 그 다음 크레페는 딸이 했다.
딸과 아들은 낮을 굉장히 많이 가리는 전형적인 사춘기 아이들 같았다. 자전거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내가 엄마 아빠에게 보여줄 때마다 그 사진을 보러 굳이 일어나서 큰 식탁을 빙 돌아와서는 내 핸드폰을 보고는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그냥 보여달라하면 보여줄 건데 말이다. 그 딸도 성인이 되면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려는 꿈을 가진 아이였다.




내 초췌한 몰골 때문에 한국인에 대한 안좋은 인상을 가지게 될까봐 웜샤워를 할 때마다 마음이 찝찝하다.
프랑스는 직장인들도 1년에 6주 정도씩 휴가가 있고 길게 붙여쓰는 일도 아주 흔하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2주씩 쉬는 방학이 수시로 있고 보충수업 따위는 없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방학도 없이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니까 경악을 금치 못한다. 심지어 사실을 그대로 말하면 믿지 않을까봐 이마저도 줄여말한건데 그렇다.
아무튼 간만에 침대에서 푹 잘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