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와 당근 요리, 그리고 필립 아저씨의 커피 한 잔
[유럽 자전거 여행] #04 2025.04.08 웜샤워 호스트 필립 아저씨와의 이별. 다시 시작되는 해안가 라이딩
2025.04.08
아침에 주방으로 내려가니 아저씨가 커피를 준비해놓으셨다. 매일 아침 러닝을 하신다는데 내가 일찍 출발한다면 자신을 못 만날 수도 있다고 어젯밤에 얘기했었다. 준비해주신 커피를 마시는데 때마침 돌아오셔서 작별인사를 하고 출발했다.


성미구엘 교회 바로 옆에 사는 아저씨는 종교가 없다. 대신 불교 철학을 좋아한다고 했다.
종교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불교의 ‘인연’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보면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이해가 간다. 잠깐 만났던 사람과 이렇게 스쳐가듯 헤어지는게 얼마나 견딜 수 없을만큼 슬폈으면 ‘인연’이라는 개념까지 만들어냈을까. 지금이야 형식적인 연락처 주고받기를 통해서 그 슬픔을 상쇄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한번 만나고 헤어지면 정말로 영원히 만나지 못할 사람 아닌가. 오늘 필립 아저씨와 헤어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프랑스어를 3년을 넘게 공부를 했다. 프랑스 문학이 좋아서 한 때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기에 프랑스어를 공부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읽기와 단어위주로만 공부했고 주변에 프랑스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었기에 마치 우리나라 수능 식으로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한참 공부할 때 내가 생각했던 내 수준은 우리나라 고1 교과서 영어지문 수준의 프랑스어 지문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됐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말을 못하는데. 심지어 프랑스어에 손을 뗀지 오래되어서 지금은 아주 기본적인 수준 밖에 못한다.

가는 길에 영어를 못하는 프랑스 아저씨를 만났다. 대체로 스페인, 프랑스에 나이 많으신 분들은 영어를 못한다. 그래도 프랑스인이 친절하게 천천히 말하면서 단어 위주로 설명을 하면 대강은 알아들을 수 있다. 그 사실이 나도 신기하다. 아무래도 프랑스에 좀 더 오랜 시간을 머무는게 좋을 거 같았다. 지금 생각하는 내 여행루트는 프랑스 너머 이탈리아로 가서 이탈리아 남쪽 항구도시 브린디시에서 페리를 타고 그리스로 가는 일정이다.(날씨가 최적이다.) 하지만 어제 나를 재워준 필립 아저씨 말로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좀 불친절하고 자동차 운전을 엄청 험하게 한다고 한다. 늘 그렇지만 나도 나의 경로를 모르겠다. 그리스 아테나까지만 갈 수 있다면 어떤 경로를 택해도 상관없다.
가다가 바닷가 앞에 슈퍼가 하나 보이기에 들어가서 긴 바게트하나와 닭다리 당근 요리를 하나 사서 먹었다. 동남아는 현지인이 아닌 이상, 여행하면서 하는 모든 것이 돈이다. 물을 좀 달라고 하면 그냥 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돈을 받고 판다. 길거리에 벤치나 쓰레기통도 잘 없다. 유럽은 식당 물가는 매우 비싸지만 큰 마트 같은 곳에는 음식 가격이 싼편이다. 곳곳에 의자나 벤치, 공짜로 마실 수 있는 물도 많고 공공 화장실도 많아서 와일드 캠핑 위주로 한다면 동남아보다 더 싼 가격에 여행할 수 있을 거 같다. 대게 수돗물을 많이들 마시는데 그래서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물 좀 달라고 하면 군말하지 않고 잘 떠다준다.
오늘은 해안가 쪽으로 달렸는데 건물들의 모양새가 아주 익숙하다. 붉은색 지붕의 비슷비슷한 건물들.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 매번 보던 건물 양식들이다.(두 국가 모두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어디를 가도 이색적인 풍경이 많아서 여기저기 사진을 많이 찍었다. 동남아에 있을 때 서양 사람들이 내가 보기에 아주 평범한 풍경도 “Beautiful”이라며 사진기를 마구 들이댔었는데 그 이유를 알 거 같다. 그 사람들에겐 그게 이국적인 풍경이고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이 평범한 풍경이다.





오늘은 와일드 캠핑 장소를 좀 찾기 힘들었다. 텐트를 칠만한 장소는 있었는데 바닷가 근처여서 해풍이 두려웠다. 또 다른 장소는 큰 도로와 가까워 안전의 문제가 있었다. 한참을 주변을 둘러보며 공동묘지 옆에 텐트를 칠까도 고민했지만 마을과 너무 가까웠기에 근처에 있는 캠핑장으로 갔다.
오늘 간 캠핑장은 거의 3만 5천원 정도 주고 묵었는데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유료 캠핑장이 자꾸만 싫어진다. 전기를 쓰려면 추가 요금을 받는 곳도 많다. 유료 캠핑장의 장점은 1.안전 2.샤워 3.화장실 4.전기 정도가 될텐데 와일드캠핑 장소만 잘 찾는다면 전기를 제외하고는 유료캠핑장 못지 않게 잘 수 있다.

한국라면이 없어서 베트남식 라면을 사서 먹었다.

텐트를 칠 때는 항상 태양의 방위각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