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대신 내륙으로: 그리스 국경을 넘으며 잃어버린 한 시간
[유럽 자전거 여행] #47 2025.06.08-09 알바니아를 떠나 그리스로 이오아니나에 도착합니다. 때마침 국경일이라 이곳에서 하루 더 휴식합니다.
2025.06.08
사란다에서 해변가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 그리스 이구메니차로 향할 수 있고 내륙으로 들어가면 이오아니나라는 도시로 갈 수 있다.(꽤 멀다.) 서유럽에선 어느 방향으로 가나 캠핑장이나 웜샤워 호스트가 있기 때문에 루트를 짜기가 쉬운데 이 동네는 상황이 좀 다르다.

지리도 옷감이나 목재처럼 결이 있다. 어느 방향으로는 자연스럽고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는데 다른 방향으로는 큰 산이나 강이 가로막고 있어서 가기가 힘들다. 특히나 우리나라나 발칸반도처럼 산맥이 많은 지역은 더 그러하다. 대전에서 자전거를 타고 광주로 내려가긴 쉬워도 광주에서 산맥을 넘어 대구로 가긴 힘들다.
한쪽으로 가기로 결정했으면 그 길로 쭉 가야지 다른 길로 못간다는 말이다. 오늘은 내륙 루트냐, 해안 루트냐를 정하는 완벽한 갈림길에 섰다. 어제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내륙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내륙으로 들어갔을 때, 그리스에 유명한 동방 정교회 수도원 메테오라에 갈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이제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시작돼서 바다로 갔다가 쪄죽기 딱 좋다. 바닷길은 차량 통행이 많은것도 그렇고 말이다. 쉽게 루트를 바꿀 수 없기에 미리 유료 캠핑장, 와일드 캠핑할만한 장소를 몇 군데 알아놓았다. 대략 보니 아테네까지 가기 위해선 수차례 와일드 캠핑은 피할 수 없겠다.

오늘 열심히 밟으면 그리스 내륙 도시인 이오아니나로 들어갈 수 있다. 가는 길에 이 근방에 유명한 관광지 blue eye 호수를 잠깐 구경하고 갔다. 거기서 네덜란드 여자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는데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여행한지 꽤 됐다고 한다. 역시 네덜란드 사람이다.
블루 아이(Blue Eye, Syri i Kaltër)란?
사란다 근처에 있는 짙은 파란색 카르스트 샘이다. 위에서 보면 정말 눈동자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고, 물빛이 워낙 선명해서 알바니아의 대표 자연 관광지 중 하나로 꼽힌다. 정확한 깊이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주 깊은 샘으로 알려져 있다.



열심히 밟아서 드디어 그리스 국경을 넘었다. 원래 그리스 국경 바로 직전에 있는 마을에서 하루 자고 갈까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냥 국경을 넘었다. 그런데 그리스 국경을 넘자마자 한시간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는 내가 이전까지 왔던 서유럽의 모든 국가와 다른 시간대를 사용한다. 오후 2시쯤 국경을 넘었는데 갑자기 오후 3시가 넘었다.
인터넷 정보로는 알바니아의 개들이 가장 위험하다 했는데 경험상 알바니아에서 개의 위협을 느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리스 국경을 넘어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위협적인 개들을 좀 만났다.



한참을 밟아 이오아니나에 호스텔에 도착했다. 이오아니나는 북서부 에피루스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해변 휴양지보다는 차분하고 역사적인 도시라서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그리스에서는 중요한 도시다.
2025.06.09
이튿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해서 우선 유심칩을 사러 갔다. 하지만 웬걸, 모든 통신사가 전부 문을 닫았다. 인터넷 없이는 여행이 좀 힘들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길가는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공휴일이란다. 인터넷에 알아보니 오늘은 Monday of the Holy Spirit. 하는 수 없이 근처 마트에서 장을 좀 보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의도치 않게 자꾸 쉬면서 여행한다.
여기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사진에 있는 그리스인 커플은 며칠 정도 그리스에서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아테네에 도착하면 꼭 연락을 달라고했다. 호스텔에는 야외 테이블이 있는데 거기서 내 여행 후기를 쓰고있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길래 한국인이라고 하니 자기는 페이커 팬이란다. 한국의 위상이 이정도다.



난 한국에 있을 때 사람들이 왜 시간을 들여서 굳이 힘들게 요리를 하는지 이해를 잘 하지 못했었다. 그냥 돈을 주고 음식을 사먹고 그 시간에 일을 더 해서 돈을 더 벌면 된다는 얄팍한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혼자서 이렇게 다녀보니 내 손으로 그럴듯한 음식 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이게 얼마나 불행한 사고방식인지. 손에서 나오는 행복이 우리 삶의 행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기준점이 낮으면 쉽게 행복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텐트에서의 삶이 내 숙소의 기준점이라 어떤 형편없는 숙소에서도 만족하면서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안에서 쉬고 있는데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았는데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해방 시위를 하고있다. 이 호스텔에서 만난 헤라클레스를 닮은 그리스인은, 그리스인들은 자기 나라 정치에는 아무 관심 없으면서 자꾸 다른 나라 정치를 위해서 시위한다고 나한테 말했다. 아무튼 그 친구는 무척 헤라클레스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