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벗으세요" 군사 시설에서 마주한 스위스 군인의 매서운 눈초리
[유럽 자전거 여행] #16 2025.04.23 - 24 라인강이라는 자연적 방벽을 넘어 스위스에서 독일로 국경을 넘습니다. 군사 시설 오진입으로 인한 삼엄한 신분 검사부터, 추위를 이기기 위해 17,000원짜리 매트리스로 장비를 보강한 처절한 생존기까지.
2025.04.23
오늘의 목적은 독일. 스위스와 독일 국경에 라인강이 흐르는데 그 바로 앞에 캠핑장이 하나 있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국경이 왜 여기서 그어져 있는지를 대충 이해하게 된다. 인조적으로 그은 국경선이 아닌 이상에야 국경 사이에 강이나 호수, 산과 같은 자연적인 방벽이 있다.
취리히도 가보고 싶지만 내일은 비가 오기 때문에 비를 피하려면 스위스에서 이틀을 더 있어야 한다. 그만큼 돈이 엄청나게 깨진다.



100km 가 넘는 길을 가야해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동남아야 대부분 평지고 길거리에 식당이나 편의점, 가게가 널려있는데다 캠핑을 할 일이 없어 목적지까지 향하는 길에서 시간이 지체될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유럽에선 캠핑장비를 펼치고 다시 패킹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들고 대체로 음식을 해먹어야 해서 거기서 또 시간이 뺏긴다. 음식을 사러 마트에 들러서도 시간이 많이 뺏긴다. 그거 불편하다고 동남아처럼 식당에서만 밥을 먹고 호텔에서만 잔다면 하루에 30만원 정도를 예산으로 잡아야하지 않을까?
그나마 오늘같이 캠핑장으로 향할 때는 물걱정, 화장실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아무튼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며 부지런히 달렸다. 어제도 잘 때 추웠기 때문에 반드시 대책이 필요했다. 메트리스가 문제인 것 같았기에 새 에어메트리스를 사리라 마음먹었다. 보통 나는 기왕 살거 좋은 거 사서 오래 쓰자는 마인드라, 데카트론에 써머레스트 에어매트리스(30만원 이상)가 있으면 그걸 사야겠다 생각했었다.(프랑스에서는 데카트론에서도 그 제품이 있었다.)
하지만 스위스 데카트론에는 그 제품을 취급하지 않았고 데카트론 브랜드에서 나온, 가격은 조금 더 싸지만 덜 따뜻하고 더 무거운 에어매트리스 제품이 있었는데 망설이다 그냥 17,000원짜리(R-value 1) 아주 가볍고 돌돌말아쓰는 매트리스를 구매해버렸다. 대신 부피가 너무 크고 바닥의 냉기를 아주 조금만 막아줄 수 있다. 2주 정도만 있으면 날씨가 풀릴터라 이걸 쓰다가 더워지면 그냥 버리면 될 터. 자꾸 장비가 많아지니 자전거 패킹이 자꾸 괴상해진다.


요근래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도로 공사를 하는 곳이 많다. 오늘도 한 곳이 막혀있어서 우회하려고 길을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웬 군인들 여러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군사시설로 왔다며 내 신분검사를 요구한다. 여권을 요구했는데 공교롭게도 여권에 50유로 지폐가 꽂혀있어서 나에 대한 의심이 더 커져버렸다. 매서운 눈초리로 안경도 벗으라고 하며 내 여권사진과 내 얼굴을 대조했다. 군사시설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지도 철저히 확인한 후 내 신분을 상세히 확인하고 나서야 나를 풀어주었다. 걔 중에는 자전거 취미를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잠깐 하니 나를 응원해주었다.
베트남에서 바르셀로나로 오는 비행기를 탈 때 출국검사도 굉장히 까다로웠었다. 베트남 공안이 나를 굉장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몇번이나 쳐다봤고 나를 제외한 다른 출국장의 사람들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워낙에 내가 동남아에서 국경 이동을 많이 했고 스탬프도 많이 찍혀있는데다 체크인짐 무게를 줄이려고 옷에 있는 모든 주머니에다가 짐을 가득 채워놨어서 나는 항상 수상한 사람처럼 보인다.
우여곡절을 겪고나서 라인강을 넘어 독일 캠핑장으로 도착했다. 도착하니 비가 또 내린다. 내일도 온종일 비가 내린다는데 아무래도 내일 하루 쉬어가야겠다.


라인강을 건너 도이칠란트로!
2025.04.24
새 메트리스를 까니 조금 낫긴한데 그래도 충분히 따뜻하지는 않다. 매일 매일 좀 더 따뜻하게 자는 방법만 고심하고 있다. 사실 내가 가진 모든 장비는 뉴질랜드 여행에 최적화된 장비다. 동남아는 장비랄게 굳이 필요없고 유럽은 내가 원래 지중해를 끼고 돌 생각을 했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구간을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매일 바다를 끼고 라이딩을 하는게 지겹다는 사실을 베트남에서 깨닫기도 했고, 더 여러나라, 이름난 도시들을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지금 이토록 고생 중이다.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와서 음식을 해먹으면서 캠핑장에서 쉬었다. 며칠만 지나면 좀 더 낫겠지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의 추위와 비바람을 견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