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그로스글로크너 넘기: 한스 짐머의 선율 속에서 쏟아낸 이유 모를 감격

[유럽 자전거 여행] #26 2025.05.11 획득고도 1,923m, Grossglokner 도로를 짐 잔뜩 실은 자전거로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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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그로스글로크너 넘기: 한스 짐머의 선율 속에서 쏟아낸 이유 모를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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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1

오늘은 대망의 Grossglockner를 넘는 날이다. 이름도 멋지다. 여행하면서 멋진 이름을 가진 지명이나 산들이 몇 개 기억나는데 뉴질랜드의 통가리로산과 그로스글로크너. 멋진 이름 Top2다.

Grossglockner Alpine Highway란?

Grossglockner High Alpine Road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고산 파노라마 도로다. 총 길이는 48km이고, 길 위에 36개의 굽은 구간이 이어진다. 가장 유명한 고개인 Hochtor는 해발 2,504m, 차로 갈 수 있는 최고 지점인 Edelweiss-Spitze는 2,571m다. 이곳에서는 3,000m급 봉우리 30개 이상과 오스트리아 최고봉인 Grossglockner(3,798m)까지 조망할 수 있다.

잘츠부르크주와 케른텐주를 잇고, Hohe Tauern 국립공원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길을 따라 전망대, 전시, 하이킹 코스가 붙어 있어서 “산을 넘는 길”이면서 동시에 “알프스를 보여주는 길” 역할을 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하이라이트로 꼽는 곳은 Kaiser-Franz-Josefs-Höhe(2,369m)로, 여기서 빙하와 Grossglockner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Grossglockner High Alpine Road - The excursion destination in Austria
Grossglockner High Alpine Road: Discover one of the top attractions in Austria. You can find all the important information for your Glockner trip online here!

사실 이 산쪽으로 오지 않았으면 날씨도 좋았을거라 벌써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넘어서 남하하여 세르비아로 진입했을 일이다. 평지의 지루한 라이딩을 했겠지.

오전 4시 30분 칼기상 후, 텐트 안에서 미리 준비해둔 바나나와 빵, 커피를 우걱우걱 먹었다. 올라 가는 길에 음식을 먹을 여유는 없을 거 같아서 아침에 최대한 많은 칼로리를 보충하는 전략이다.(이것 때문에 올라가는 내내 옆구리가 좀 쑤셨다.) 텐트의 결로를 전혀 말리지 못하고 텐트 가방 안에 쑤셔놓고 출발했다.

어제까지 산 위를 덮고 있던 구름이 걷히니 숨어있던 설산의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구름이 없었으면 며칠 전부터 보였어야 할 설산이다. 열심히 게이트로 향했다. 웹사이트에서는 아직 자전거 통행금지라고 나오는데 실제로 가보니 자전거 통행이 아무 문제 없이 된다. 일기예보 상 오늘은 맑은 날이라 자전거 통행에 문제가 없을거라고 혼자 막연히 생각했었다.

큰 맘을 먹고 열심히 걸었다.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나는 어떤 측면에서는 싸구려 감상주의자적인 면모도 있는지라 가슴을 웅장하게 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다.(한스 짐머의 음악)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맑은 하늘, 조금씩 비치는 햇살과 설산의 풍경이 어우러지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아직도 Time을 들으면 이 때의 감격이 떠오른다.

이유 모를 감격의 눈물도 많이 흘리면서 산을 올랐다. 저녁에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 여기를 오르면서 좀 울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이후로 몇 달 동안이나 내가 그냥 너무 힘들어서 운 지 알고있었다.

수치상으로는 라오스때보다 경사도가 더 높은 건 맞는데 도로 포장이 잘 되어있어서 중간 중간에 간간히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구간도 좀 있었다. 일찍 출발한게 정말 잘한 선택인 것이 정말로 차가 별로 없었다. 여기서 차가 좀 더 많았더라도 위험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사진과 동영상을 이만큼 찍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난 일인데 이런 산을 오르려면 그에 걸맞는 복장을 갖춰야한다. 몸의 온기는 보존해주면서 땀은 밖으로 빼내는 그런 등산용 복장이나 자전거 복장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자전거 옷을 이미 한국으로 전부 보내버렸다. 그 옷들은 여름용, 끽해봐야 따뜻한 봄, 가을용 옷이라 아마 있었더라도 큰 차이는 없었을 거다.

내가 입은 옷은 다음과 같다.

  1. 쿠팡에서 몇 천원 주고 산 나시
  2. 베트남 시장에서 산 나이키 짭 긴팔 티셔츠
  3. 유니클로 경량패딩
  4. 데카트론 방수자켓
  5. 태국 치앙마이 데카트론에서 산 러닝 바지
  6. 데카트론 방수 바지

복장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멈추면 땀이 식으면서 온 몸에 한기가 돌았다. 춥기는 추운데 땀이 뻘뻘나서 축축하게 젖은 유니클로 경량 패딩을 벗어버렸다. 올라갈수록 실시간으로 온도가 떨어지는게 느껴지고 구름도 많아져서 해가 가려지는 순간이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오래 멈춰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질 거 같아서 쉴 수가 없었다.

하이킹, 캠핑, 자전거, 오토바이, 테니스 등 각각의 스포츠마다의 복장이 있다. 예전에 나는 단순히 그 복장들을 사실 디자인 요소로서만 바라봤었다. 바람막이 같은 것도 실제 바람을 막는 옷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자켓', '코트'처럼 하나의 옷 이름으로 쓰일 때가 많다. 600, 700, 800 등의 필파워 숫자가 새겨진 노스페이스 패딩 같은 것 들. 이건 단지 디자인, 패션용이 아닌 생존의 숫자다.

여우의 신포도 마냥 그런 좋은 옷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좋은 기능성 옷을 입은 자들을 보고 괜한 돈지랄이라며 비아냥댄다. 유튜브 댓글만 봐도 그런 경향이 보이고 나도 예전에 그랬다.

날이 맑아서 망정이지 만약 흐린날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지난번 뉴질랜드에서 거트루드 새들을 올랐을 때도 그렇고 날씨 운이 뒷받혀주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복장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을 거 같다.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23 | 눈 덮인 설산, 맨발로 주파하기: 밀포드 사운드 거트루드 새들(Gertrude saddle) 정복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 #23 2024.12.07 필수 준비물: 등산복, 레인재킷, 등산화, 조난 GPS 장치. 샌달 하나 만으로 거트루드 새들(Gertude Saddle)에 가다.

꽤나 많은 자전거를 만났다. 짐을 싣고 가는 내가 신기했는지 전부들 Chapeau, Respect, Thumbs up을 나에게 날려줬다. 난 저 '샤뽀(Chapeau)'가 참 맘에 든다. 모자를 벗는 시늉을 하면서 경의를 표하는 제스쳐다.

🎥 Flyover 경로 동영상 보기

시간상 거의 오차가 없을 정도로 계획대로 맞아떨어졌다. 혹시나 너무 늦게 정상에 도착할 수도 있지않을까라는 생각에 내리막 중턱에 있는 한 캠핑장을 알아놓았는데 거기는 오늘 밤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진다. 조금 더 가면 다른 캠핑장이 있는데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라 그 곳으로 갔다.

감기에 걸리기 직전 느낌이 들었다. 찬바람을 많이 맞아서 목에 자극이 갔는지 가래도 계속 나온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칫하다가 진짜 감기에 걸려 골골댈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감기에 걸리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몸이 너무 쳐지지 않도록 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 따뜻한 차를 마시며 감기기운을 이겨냈다. 놀랍게도 효과가 있었다.

하강하는데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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