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준비 과정
왜 여행을 가게 되었나?
2023년 가을부터였나 목적 없는 영어공부를 죽어라 했었다. 매주 미국인 목사님 집에 가서 한시간 씩 회화 연습을 하고(시간당 5만원), 하루에 30분 주 5회 캠블리라는 화상통화 사이트를 통해서 원어민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나는 대학병원 나이트 약사로 근무하면서, 남는 시간에 내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건 그저 영어 공부 뿐이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그렇게 영어공부를 했었던 것 같다.

캠블리에 있는 많은 선생님들이 동남아나 남미, 아프리카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는데 이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나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었다. 실제로도 여행을 하면서, 치앙마이, 다낭 등에서 이 사람들의 조언을 얻기도 했다. 그해 말(2024년)이나 다음 해(2025년) 초즈음 세계여행을 길게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됐는데 어떤 형식의 여행이 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배낭여행 혹은 산티아고 순례길 정도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여행의 유일한 방식이었다.
마침 2024년 6월 말,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부모님께로부터 독립하여 직장 근처 경주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나이트 약사는 3일에 한 번, 15시간 동안 근무하는 형태라 여가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남은 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운동을 많이 했다. 어느 날엔 친구에게 빌려온 전기자전거를 타고 형산강을 라이딩할 때, 그 순간에 꽃 냄새를 싣고 온 바람이 잊고 있던 옛 기억을 모조리 살려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말이다.
2011년 고등학생 시절, 나는 야자가 끝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선 자전거 세계여행자들의 블로그 글을 읽으며, 언젠가는 나도 자전거로 여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지. 그 사실을 10년 넘게 잊고 살다가, 이번이야말로 잊었던 꿈을 실현할 절호의 찬스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바로 집으로 돌아와 바로 친구들에게
나는 자전거 세계여행을 떠날거다.
라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자전거 여행 유튜브를 닥치는 대로 봤다.
이 영상이 죽어있던 내 모험심을 살려냈다.
자전거 여행 준비 시작





구색을 갖춰가는 내 자전거
나는 2014년에 친구들과 함께 국내 여행을 일주일 한 후에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그 후로는 자전거 거의 타지 않았다. 공부하느라 뚱뚱해진 20대 시절에는 따릉이만 타도 땀이나서 짜증나했던 적이 있었단 말이다. 게다가 캠핑, 등산 같은 아웃도어 활동과도 담을 쌓고 살아 이쪽으로는 완전한 문외한이었다. 24살이었나 전역하고 친구들과 소백산을 간 적이 있는데 어찌나 궁시렁대며 올라갔었는지, 그 때 가자고 했던 친구에게 아직도 미안하다.
직장은 후임자가 구해질 때까지 다니기로 하고, 그동안 바이크패킹에 관한 정보를 긁어모으며 장비를 마구 샀다. 매일 매일 좁은 집에 택배박스가 쌓여갔다. 돈도 많이 썼다. 아래는 준비하면서 비용을 정리한건데 누락이 좀 많을 수 있다. 거의 두달 만에 준비했다. 여행을 하려고 핸드폰을 구매하긴 했는데 핸드폰을 준비비용에 넣긴 좀 애매하긴하다. 그리고 캠핑 장비와 자전거도 여행이 끝나고도 계속 사용을 하는거니까 자산으로서 이해하자. (제발)
자전거와 장비를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큰돈이 들어갔다. 핸드폰을 제외한 대략적인 총액은 아래와 같다.
자전거 여행 준비 비용 세부 내역 보기
| 품목 | 금액 |
|---|---|
| 자전거, 전조등, 후미등, 물통 | 2,230,000원 |
| 백미러 | 81,000원 |
| 캐논데일 탑튜브백 | 47,000원 |
| 샥즈 오픈런 프로 미니 | 120,000원 |
| 헬멧 | 52,000원 |
| 펌프 | 17,840원 |
| 노트북 케이스 | 75,000원 |
| 가민 익스플로러 2 | 389,000원 |
| 가민 바리아 | 252,300원 |
| 고글 | 77,000원 |
| 자전거 마운트 | 26,910원 |
| 침낭 | 380,000원 |
| 에어매트(중고판매 등) | 60,000원 |
| 핸드폰 | - |
| 보조배터리 | 37,900원 |
| 여행 멀티플러그 | 35,800원 |
| 멀티툴 | 8,660원 |
| 칼 | 19,800원 |
| 의자 | 125,000원 |
| 텐트 | 708,000원 |
| 자전거거치대 | 30,830원 |
| 고체치약 | 7,690원 |
| 자전거 옷 / 물통 등 | 373,400원 |
| 이너웨어 | 15,500원 |
| 펑크패치 | 2,620원 |
| 에어타월 | 15,500원 |
| 오르트립 퀵랙 | 159,000원 |
| 오르트립 그래블팩 | 239,000원 |
| 오르트립 포크팩 | 159,391원 |
| 락브로스 삼각프레임백 | 28,890원 |
| 락브로스 탑튜브백 | 14,750원 |
| 보조배터리, 충전기, 선 | 226,190원 |
| 씨투써밋 베개 | 44,400원 |
| 픽디자인 케이스 | 109,282원 |
| 픽디자인 마운트 | 159,000원 |
| 다이소 잡동사니 | 16,000원 |
| 쿨마스크 | 5,290원 |
| 삼발이 어댑터 | 13,700원 |
| 스트랩 | 2,400원 |
| 캠핑 랜턴 | 15,290원 |
| 반합 | 47,500원 |
| 스토브 | 20,000원 |
| 고프로 | 310,000원 |
| 고프로 마운트 | 47,530원 |
| 휠교체 | 700,000원 |
사실 이 정도면 초호화 장비다. 왜 이렇게 럭셔리 장비를 구입했는지는 다른 글에서 밝혔는데 나는 "내가 몇 km를 달릴 수 있는지, 내 몸뚱이가 얼마만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지에 관한 데이터가 전혀 없었기에 돈을 많이 투자하여 경량화에 올인했다."

자전거 구매
가장 중요한 자전거. 자전거를 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여행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 자전거의 종류는 크게 네가지인데
- 로드 자전거
- 미니벨로
- 여행용 자전거
- 그래블 자전거
로드 자전거는 오프로드를 자주 만나게 되는 자전거 여행의 특성상 부적합하다. 당시에는 미니벨로는 생각지도 않았다. 남은 두 가지 선택지인 여행용 자전거와 그래블 자전거 중, 나는 일상생활에서도 탈 수 있는 그래블 자전거를 사기로 결심했다.
자전거를 잘 아는 친구에게 어떤 자전거를 사야하냐고 물으니 괜찮은 바이크숍에 가서 할인율이 가장 높은 자전거를 사면 된다고 말했다. 곧바로 대구 파라마운트에 가서 지금의 자전거인 '캐논데일 탑스톤 카본 4'를 구매했다. 당시 캐논데일이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카본 제품은 할인율이 40%나 되어 오히려 카본이 더 저렴했었다. 멍청하게도 이때는 카본자전거가 더 가볍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내구성이 약해 장기 여행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그때 당시에 나는 직원에게도 1 ~ 2개월 정도 도로가 잘 닦인 곳으로 여행을 갈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필드테스트
자전거 실력을 쌓기 위해서, 그리고 내 몸에 관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 짧은 기간동안 여기 저기 자전거를 타기 위해 많이 쏘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캠핑도 가보고 100km씩 타기도 해봤다. 생각보다 할만했다. 이 때 알아낸 사실 하나. 자전거의 무게가 일정 비율 늘어난다고 해서 내가 갈 수 있는 거리가 그 비율만큼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평지에서는 짐이 없는 자전거로 100km 갈 에너지와 짐이 잔뜩 달린 자전거가 80km 가는 에너지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




바보같이 모래사장에 짧은 펙을 박았다가 아침 해풍에 텐트가 날아갈 뻔 했다.




경주의 가을
출국
나는 살면서 해외여행을 몇 번 해보지 못했다. 25살에 처음으로 친구들과 라오스 여행을 갔고, 짧게 대만과 후쿠오카 여행을 한게 내 인생 해외여행의 전부였다. 심지어 예전에는 놀랍게도
구글 스트리트 뷰로 보면 되지 왜 여행하냐
라는 말도 한 적이 있다.
8월에 직장 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10월 30일까지 일을 하고, 자전거를 가지고 바로 서울에 있는 형 집으로 넘어가서, 11월 2일 뉴질랜드로 출국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9월 말이나 10월 초에 일을 그만두고 자전거 여행이 수월한 일본으로 넘어가서 자전거 여행을 한 달 정도 할 생각이었다. (캠핑X). 그리고 나 스스로가 자전거 여행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판단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다른 국가로 여행을 지속할지 멈출지를 정하려 했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늘 그렇듯 퇴사 일정조차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에 나는 다른 여행지를 생각해봐야 했다. 11월에 날씨가 좋은 곳은 남반구와 동남아 뿐이다. 동남아는 뉴질랜드 여행이 끝나고 가도 늦지 않다. 남반구에 있는 호주는 너무 크고 남미는 너무 멀고 위험하다. 뉴질랜드가 그나마 길쭉하고 사이즈가 괜찮으니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여행 경험도 별로 없는 내가 갑자기 6개월 이상의 장기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려고 하니 너무 떨렸다. 혼자서 이 많은 짐의 위탁 수하물과 기내 수하물을 분류하고 자전거를 포장해서 위탁하고 경유를 해서 날아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복잡했다. 하지만 뉴질랜드로 떨어지기만 한다면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자신감은 있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경로 설정
출발할 당시의 최초 계획은 이러했다.
- 뉴질랜드 종단:
- 아까 언급한 이유로 정함
- 동남아 인도차이나반도(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
- 뉴질랜드 여행이 끝나면 이 곳의 건기가 시작된다.
- 캠블리 선생님들과 통화하면서 동남아에 'Banana Pancake Trail'이라고 불리는 서양 사람들이 배낭여행하는 루트가 있는데 이 경로를 대강 따라갈 예정

바나나 펜케익 트레일이란?
동남아의 게스트하우스나 여행자 거리에서 서양 배낭여행자들을 상대로 바나나 팬케이크 같은 익숙한 아침 메뉴를 많이 팔았고, 그런 음식이 보이는 곳은 곧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는 상징이 됐다.
싸고, 쉽고, 사람 만나기 좋고, 초보 배낭여행자가 동남아를 익히기 좋은 루트.
- 유럽 아테네 출발 →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 동남아에선 하노이가 최종 목적지가 될터인데, 자전거 여행의 성격을 생각하면 중국과 중앙아시아를거쳐 터키방향으로 가는게 더 좋을 것이다.(실크로드)
- 하지만 여행이 무한정 길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유럽에 한 번도 가지 못한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유럽에 꼭 가보고 싶었다.
6개월 정도로 잡았는데 실제로 8개월 정도 걸렸고 경로도 조금 바뀌었다.



